[민주화보상법 시행령]'항거'개념 폭넓게 해석

  • 입력 2000년 7월 4일 03시 05분


행정자치부가 4일 국무회의에 상정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 시행령’의 가장 큰 특징은 ‘민주화운동’의 개념을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법인 민주화운동보상법은 “‘민주화운동’이라 함은 1969년 8월7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민주 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시행령에서는 모법의 ‘민주화운동’ 정의 중 ‘항거’라는 표현을 광의로 해석한 것이다. 시행령 제2조는 “‘항거’는 직접 국가권력에 항거한 경우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이 학교 언론 노동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발생한 민주화운동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나 기타의 자에 의하여 행하여진 폭력 등에 항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의 통치에 항거한 경우를 포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민주화운동을 하다 투옥 또는 해직당했거나 장애를 입는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직접 피해를 본 사람들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의 압력을 받은 사용자나 학교당국 등에 의해 간접 피해를 본 사람들까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봐야 한다는 게 정부의 이번 해석이다.

시행령 성안 과정에서 정부 내에 ‘민주화운동’의 개념을 확대 해석하는 데에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중론자들은 “모법의 민주화운동 개념 정의는 보상에서 제외된 사람 등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최종적으로 법원의 해석에 따라야 할 사항이므로 하위법령에 해석규정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시행령 제2조 삭제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각에서는 모법에 규정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 중 ‘통치’의 의미는 국가권력에 의한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국가권력에 항거한 경우로 한정돼야 하는데 시행령에서 사인(私人)에 항거한 경우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모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모법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법적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개념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다는 의미를 국가권력에 직접 항거한 경우로 국한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는 의견이 정부 내에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예를 들어 민주화선언문에 서명해 해직당한 교수 중 국립대 교수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보고 사립대 교수는 제외시킨다면 형평성을 잃고 모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행자부는 이에 따라 당시의 통치상황에 비추어 국가권력과 연계된 사인에 대한 항거까지를 민주화운동에 포함시키기로 최종 결정했다. 특히 사인에 대한 항거에 해당하는 경우 모법의 규정인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에도 해당해야 민주화운동이 되는 것이므로 시행령처럼 ‘항거’의 개념을 해석하더라도 민주화운동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시행령이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돼 시행에 들어가면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보상금이나 의료비 지원, 생활지원금 등 경제적 보상뿐만 아니라 명예회복의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 관계자는 3일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명예회복과 보상을 함으로써 생활과 복지를 배려하며 민주발전과 국민화합에 기여토록 한다는 게 이 시행령의 기본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차수기자>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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