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대혼란]"왜 진료 안해주나" 환자들 항의

  • 입력 2000년 6월 21일 01시 15분


병원들이 집단폐업에 돌입한 20일 전국의 종합병원은 사전에 폐업사실이 알려진 탓인지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었으나 국공립병원과 보건소는 몰려든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일부 병원에서는 진료를 거부해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으며 곳곳에서 마찰과 시위가 벌어져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날 대형 약국에는 병원에 가는 대신 약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큰 종합병원 환자발길 뚝▼

▽대형 종합병원 ○…700여명의 전공의가 진료 거부에 들어간 서울대병원은 환자가 평소보다 적게 찾은 데다 250여명의 의대 교수가 총동원돼 별다른 진료 차질은 빚어지지 않았다.

이날 내과 외과 피부과 정형외과 등에 몰려든 외래환자는 평소 2000여명의 4분의 1인 500여명에 불과했다. 응급실의 한 간호사(35)는 “평소 응급실은 하루 종일 복도까지 환자들로 꽉 차고 진료 환자도 200여명에 달하는데 오늘은 침대도 많이 비어 있고 응급환자도 30여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고려대안암병원 경희대병원 등 다른 종합병원들도 비슷한 분위기. 전공의 400여명이 파업에 참여한 삼성서울병원은 평소 70∼80건의 수술이 이뤄졌으나 이날은 4건의 수술만이 이뤄졌다. 초진 환자는 지난주 말부터 일절 받지 않아 평소 하루 6000여명의 외래환자들이 찾던 병원은 재진 환자를 중심으로 절반 정도만 찾아왔다.

▼국공립 병원 환자 30%늘어▼

▽국공립병원 및 보건소 ○…서울 국립의료원은 일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가 진료를 받지 못한 환자나 119구조대가 실어온 환자 등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양영화(梁永華·60)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외래환자의 수가 하루 평균 1400여명이었으나 오늘은 초진환자만 30% 이상 증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보건소의 경우 이날 하루 동안 평소보다 30% 가량 늘어난 280여명의 환자가 몰렸다. 한 관계자는 “폐업이 계속될 경우 환자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각종 약품 등을 추가로 비치했다”고 말했다.

노원구보건소는 평소보다 30% 늘어난 170여명의 환자들이 찾는 바람에 진료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등 혼잡을 빚었다. 또 도봉구보건소에는 평소보다 배나 되는 300여명의 환자가 몰렸으며 야간진료 인원을 비상대기시켜 놓고 만일의 돌발사태에 대비했다.

○…광주 서구 화정동 국군광주병원에는 이날 일반환자 20여명이 찾아와 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들을 진료하느라 분주했다. 국군광주병원은 24시간 근무로 환자들을 진료했으며 이를 위해 외박과 휴가 중인 군의관과 장병들을 모두 복귀시켰다.

제주지역의 경우 일반 의원 213개소 가운데 201개소가 문을 닫았다. 이에 따라 제주 북제주군 애월초등학교 학생 40명은 집단 식중독증세로 18일부터 병원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은 통원치료를 받지 못해 보건소에서 약을 타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41개 의대생 동맹휴업 결의▼

▽시위 ○…서울경기지역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오후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8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열고 “보험수가 50% 지원과 임의조제 금지 등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가피하게 집단 폐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또 전국 41개대 의대생들로 구성된 전국의과대학 의약분업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 지하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올바른 의료환경을 얻어내기 위해 전국 2만여 의대생들이 동맹휴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인지역 의대생 6000여명은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에서 올바른 의약분업을 위한 전국 의대생 동맹휴업 결의대회를 갖고 대학로까지 행진을 벌였다.

광주전남 전공의들도 이날 오전 10시 각 대학병원 앞에서 폐업선포식을 갖고 오후 2시 조선대에 모여 ‘올바른 의약분업 실현을 위한 광주전남지역 전공의 의대생 연대 결의대회’를 연 뒤 오후 4시부터 가두시위를 벌였다.

▽진료거부 ○…이날 오전 폐업 사실을 모른 채 충남 천안에서 서울 H병원을 찾은 서모씨(61)는 “6년째 만성신부전증 때문에 매달 두 차례씩 검사를 받고 약을 타갔는데 오늘은 진찰은 못 받고 약만 겨우 탈 수 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오전 3시 50분경 서울 강남구 올림픽대로상에서 사고를 당한 이진호씨(37·회사원·경기 광주군) 부부는 인근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할 수 없다고 해 사고발생 40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입원이 되지 않아 이날 오전 9시경 집으로 돌아간 이씨는 “입원 치료를 받고 싶어 경기 광주군 성남 하남시 등의 병원 20여곳에 전화를 했으나 거부당했다”며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의사들의 파업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신경전〓○…의사들이 집단 폐업에 들어감에 따라 의료사고 위험이 높아지면서 병원 관계자들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한양대의료원 지부측은 ‘병원 휴진, 의사파업 중 행동지침’이란 벽보를 통해 “의사의 진료권 및 의료사고의 책임문제 등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므로 반드시 의사의 지침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라”고 권유했다.

한양대의료원 노조는 벽보를 통해 “20일 이후의 진료차질과 의료사고 등은 전적으로 의료원장에게 책임이 있음을 경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슈부·지방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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