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경매 '복마전']정보공개 미흡, 브로커 탈법 부추겨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13분


《법원경매는 경매브로커들의 횡포로 만연해 있다. 이들은 채무자와 짜고 가짜 세입자를 만들어 내거나 공사대금, 건물 수리비용 등을 조작해 낙찰자로부터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뜯어낸다. 채권자의 몫으로 돌아가야 할 경매 대금의 상당부분이 경매브로커와 폭력조직의 손에 들어가기도 한다.》

▼구조적 허점▼

경매브로커는 현장조사를 담당하는 법원 집행관과 유착관계에 있어 대부분의 정보를 제공받고 있지만 일반인의 경우 입찰 1주일 전 고작 법원이 공시하는 감정평가기록과 임차인 구두조사 내용만 열람할 수 있을 뿐이다. 낙찰 이후 떠안게 될 권리금액에 대해서도 일반인은 아무런 정보를 갖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법원의 불성실한 정보공개가 결국 경매를 탈법의 온상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H경매컨설팅의 한 관계자는 “법원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수준은 실제 입찰에서는 무용지물”이라며 “법원은 인력난 등을 이유로 최소한의 권리관계조차 제대로 명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매브로커란▼

주로 변호사사무장, 부동산중개업자, 경매컨설팅업자, 법무사, 사채업자 등이 경매브로커로 활동하고 있으며 법원주변에 통상 50∼100명씩 있다. 하지만 변호사를 제외하고는 경매 입찰 대행 자체가 불법이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비리 유형▼

경매브로커들이 법원경매 과정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경매물건의 권리관계에 따라 다양한 ‘전략’을 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다.

▽가짜 세입자 만들기

김모씨(45)는 지난해 경매로 나온 아파트를 낙찰받았다가 가짜 세입자들과의 마찰로 곤욕을 치렀다. 경매브로커 박모씨(39)가 집주인 권모씨(45)와 짜고 허위 소액임차인(전세금 3000만원 이하 세입자)을 만들어낸 사실을 입찰 후에야 알았던 것. 결국 김씨는 임차인 2명에게 이사비 명목으로 200만원씩을 지급하고서야 입주할 수 있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소액임차인에게 우선적으로 경매 대금을 배당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들의 실제 거주여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유찰시킨 뒤 낙찰받기

한번 유찰되면 최초입찰가가 20% 떨어지기 때문에 세 번만 유찰시키면 경쟁입찰자를 줄이고 낙찰가도 감정가의 절반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 경매브로커들은 이를 위해 경매가 진행되는 법원 근처에 세입자로 가장한 사람들을 동원, 피케팅 시위를 벌이게 한다. 최근 자영업자 박모씨(54)는 경매브로커가 동원한 가짜 세입자들의 시위에 겁을 먹고 아예 입찰을 포기했다.

▽낙찰 포기시키기

낙찰을 받더라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경매브로커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낙찰을 포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순위 세입자는 경매 대금을 배당 받거나 낙찰자에게 전세금을 돌려 받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데, 경매브로커들은 이 점을 악용해 당초 배당요구를 한 세입자를 포섭해 배당요구를 철회하도록 만든다. 이 경우 낙찰자는 전세금만큼 추가부담을 떠안게 되기 때문에 낙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T경매컨설팅업의 한 관계자는 “선순위 세입자가 있는 주택은 경매브로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물건”이라며 “일반인들은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폭력배와의 유착

지난달 상가건물을 낙찰 받은 황모씨(55)는 자신을 세입자라고 밝힌 폭력배의 협박전화에 두 달 넘게 시달리다 결국 이사비와 권리금 명목으로 2000만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황씨는 “폭력배들이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고 건물에도 페인트칠을 해 할 수 없이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유능한’ 경매브로커는 대부분 폭력조직과 연계돼 있다. 법원경매가 아직도 ‘폭력조직의 자금줄’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원 직원과 유착 의혹

경매브로커들이 수시로 법원 경매계 직원들과 집행관들에게 뒷돈을 건네며 경매관련 정보를 빼낸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부동산 중개업자 H씨(45)는 “통상 경매계 직원들에게 건당 5만∼10만원 정도를 주면 입찰일까지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모든 관련서류를 열람할 수 있다”며 “집행관으로부터는 유망물건을 추천 받거나 담합입찰을 제의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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