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본인의사 최대반영 부서배치…인사도 '맞춤'시대

  • 입력 2000년 5월 25일 19시 59분


“하고 싶은 일을 해라.”

진학상담 교사가 고3 학생 한테 하는 말이 아니다. 최근 각 대기업이 신인사정책의 일환으로 ‘맞춤식 인사’를 도입하면서 내부적으로 내건 슬로건이다.

회사가 일단 배치하면 좋든 싫든 군말 없이 가서 근무해야하는 ‘일방통행식 인사’가 사라져가고 있다.

LG경제연구소 송계전 연구위원은 이런 변화를 “평생고용이 무너진 상태에서 직원은 자신의 캐리어플랜에 따라 원하는 업무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회사는 인사관리를 사람중심에서 일중심으로 전환하면서 맞춤식 인사관리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SK그룹은 계열사별로 신입사원을 뽑은 뒤 각 부서의 선배사원들이 나와 자신의 부서는 어떤 곳인지 설명하는 ‘부서박람회’ 행사를 가진 뒤 신입사원들이 일하고 싶은 부서를 적어내도록 하고 있다. 회사 인사팀은 인력수급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본인의 희망을 최대한 고려, 인력배치를 한다.

SK는 또 매년 인사고과를 매길 때 희망부서나 팀을 조사, 인사이동을 할 때 본인의사를 최대한 존중한다. 물론 현재 근무중인 부서의 팀장, 이동하려는 팀의 팀장, 인사팀의 의견도 참조한다.

SK그룹 구조조정본부 전영남 인사팀 과장은 “개인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생산성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고 맞춤식 인사는 개인의 능력과 창의력이 중시되는 디지털 경영시대에도 필요한 제도”라고 말했다.

신입사원에게만 맞춤인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물산은 최근 사내에 ‘e커머스팀’을 신설하면서 사내공모제를 통해 팀을 구성했다. 현 부서를 떠나 e커머스팀에서 일하고자하는 직원들의 신청을 받아 컴퓨터 사용능력이나 정보화 마인드 등을 평가, 팀원을 뽑았다.

또 직원들이 앞으로 자신이 어떤 일의 전문가가 될 것인지 결정하고 이를 위해 대학원이나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회사에서 교육비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삼성물산 인사팀 김창식 이사는 “앞으로 기업들은 평범한 제너럴리스트보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므로 직원들의 희망을 고려해서 이들을 스페셜리스트로 키워나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경력사원 채용은 맞춤식 인사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최근 인력유출이 심한 정보통신업계는 각 팀에서 필요한 인력을 알아서 스카우트하도록 하고 있다. 현대정보기술의 경우 신입 대 경력의 비율이 8:2에서 3:7로 변할 정도. 자연스럽게 회사를 옮기는 경력사원의 입장에서는 맞춤식 인사가 될 수밖에 없다.

외국계기업은 이런 관행이 뿌리내린 지 오래. (주)마이크로소프트와 한국 휴렛팩커드는 결원이 생길 때마다 인터넷에 ‘어떤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한데 어떤 경험과 능력이 요구된다’고 상세히 고지하거나 헤드헌팅 회사를 이용한다. 정밀기계의 부속품을 찾는 것과 비슷한 채용시스템.

삼성경제연구소 공선표이사는 “맞춤인사는 아직 우리사회에서 핵심인력에게만 해당되는 시스템”이라며 “‘하고싶은 일을 해라’는 말은 ‘능력이 없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없고 회사를 떠나라’는 무서운 의미도 숨어있다”고 말했다.

<이병기·김승진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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