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총리 '93년이후 행적' 의혹…日피신 94년 궁핍한 생활

  • 입력 2000년 5월 18일 19시 29분


박태준(朴泰俊)국무총리가 88∼93년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거액의 부동산을 명의신탁한 사실이 법원 판결로 드러나자 박총리 일가의 93년 이후 행적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93년 5월31일 국세청은 포항제철에 대한 108일간의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박총리가 가족 및 타인 명의로 360억원의 재산을 갖고 있어 증여세 63억여원을 추징한다고 밝혔다.

당시 박총리는 일본으로 몸을 피한 상태였고 세간의 여론은 ‘공인의 부정한 축재’라는 비난과 ‘YS(김영삼 전대통령)의 정치적 보복’이라는 동정론으로 엇갈렸다.

94년 10월 모친상을 치르기 위해 귀국할 때까지 박총리는 14평 짜리 아파트에서 일본 지인(知人)들의 도움을 받으며 비참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한 측근은 “박회장(박총리)의 아파트 공간이 좁아 응접실 탁자를 치우고 겨우 큰절을 올렸는데 일어나기도 비좁았다. 너무 비참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말했다. 한 법조인은 “박총리가 그 때 과연 돈이 없어서 그런 생활을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93년 박총리는 추징금 63억원 중 20억원을 미납해 서울 북아현동 자택과 대치동 오피스텔을 압류당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그러나 96년 3월 다른 부동산을 담보로 대체하고 일부 현금을 내 ‘조용히’ 압류를 풀었다. 세무당국은 “제공된 부동산과 현금 등의 출처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며 노코멘트.

박씨의 가족은 94년 세무당국을 상대로 “65억원의 증여세와 방위세 부과는 부당하다”며 소송을 내 97년 “세금 부과 절차상의 불법성이 있다”는 이유로 승소했다. 그러나 박씨 가족은 그 후 세무당국이 적법한 절차를 밟아 세금을 다시 부과하자 소송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8일 법원에 확인한 결과 97년 이후 박씨 가족이 세무당국을 상대로 낸 소송은 단 1건도 없다. 법조계에서는 “박씨 가족이 다시 소송을 냈다면 ‘증여세 회피를 위한 명의신탁인가 아닌가’라는 핵심 쟁점을 다퉈야 했다”고 말한다.

박총리측과 조창선씨(60)의 관계도 의문투성이다. 조씨는 박총리와의 인연에 대해 “포철 초창기 직원이이던 자형이 일찍 숨지자 누나가 학자금 마련을 위해 부동산업을 했다. 박총리 부인이 누나가 부동산에 대해 잘 아니까 ‘함께 투자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나는 재래시장 대표로 건물과 상가를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 박총리의 ‘재산관리인’이 결코 아니며 이번 소송의 부동산 6건도 내 전체 재산의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사건 재판부조차 판결문에서 “조씨가 박태준 일가의 재산관리인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법원 주변에서는 “재산관리인이 조씨 1명이 아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박총리가 문제의 부동산 6건을 집중적으로 매입한 시점(88∼93년)은 포철회장과 민자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던 기간으로 매입자금의 출처도 규명되어야 할 부분이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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