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사범 단속 명암]기죽은 검찰 기오른 경찰

  • 입력 2000년 3월 8일 19시 14분


검찰과 경찰의 ‘표정’이 대조적이다. 경찰은 탈주범 검거와 거물급 선거사범을 적발해 기세를 타고 있는 반면 검찰은 탈주범 사건 등 ‘악재(惡材)’가 잇따라 터져 곤혹스러운 처지다.

▼경찰 수사실적 2배 늘어▼

대검과 서울지검이 들어서 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분위기도 ‘잘 나가는’ 경찰과 ‘머쓱한’ 검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대검 청사 인근에 있는 서초경찰서 건물에는 얼마 전 ‘국민이 감동할 때까지’라는 대형 현수막이 나붙었다. 경찰의 자신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 반면 검찰청사는 특별한 움직임도 없고 적막한 분위기다.

이같은 검경의 ‘표정 차이’는 검경이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선거사범 단속 등의 ‘성적 차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경찰은 8일 서울 영등포에 출마한 자민련 조재일지구당위원장(37)에 대해 인터넷을 통한 후보자 비방 등의 혐의(선거법위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수도 서울의 현직 지구당위원장을 적발하는 ‘쾌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의 선거사범 단속 실적은 지금까지 지방의 선거브로커 등 겨우 ‘피라미’ 3명을 구속하는 데 그치고 있다.

선거사범 단속에서 경찰은 ‘양적’으로도 앞서가고 있다. 검찰은 6일 현재까지 총 267명의 선거사범을 입건하고 270명을 내사중이다. 이에 비해 경찰은 자체 인지와 고발사건을 통해 입건과 내사를 합쳐 모두 865명을 수사중. 이는 16대 총선전 같은 기간 단속실적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사이버운동 단속도 앞서▼

사이버 선거운동의 경우도 경찰이 19건을 수사중인데 비해 검찰은 12건 단속이 고작이다.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탈주범 사건은 하이라이트다. 경찰은 7일 법정에서 탈출한 뒤 마지막까지 은신하던 탈주범 정필호(鄭弼鎬·37)씨를 탈주 12일만에 영화에서나 볼 듯한 극적인 추적 끝에 검거하는 개가를 올렸다. 정씨를 검거한 주인(朱忍·28)순경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경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다소나마 극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반면 법무부와 검찰 간부들은 탈주를 막지 못한 데 대해 곤혹스러워 하는 분위기.

▼"수사권독립 활용" 의구심▼

그러나 ‘잘나가는’ 경찰에 대해 우려의 소리도 나온다. 검찰 일부에서는 “경찰이 최근의 몇 가지 성과를 부풀려 수사권 독립에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한 검사는 “경찰은 일선에서 현장 단속을 하고 검찰은 이를 지휘하는 위치에 있으므로 경찰과 검찰의 선거사범 단속 실적을 비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검사와 경찰관의 수는 전국적으로 1000여명 대 10만명 수준.

검찰 간부 A씨는 “검찰이든 경찰이든 민생치안과 법질서 확립을 위해 함께 뛰는 기관이므로 열심히 하는 것은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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