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연대 명단 뒷이야기]구사일생 유형도 가지가지

  • 입력 2000년 1월 25일 19시 10분


24일 발표된 총선시민연대 공천반대자 명단은 그 파장만큼이나 풍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명단발표가 연기되는 바람에 구제된 A의원은 단연 ‘행운상’감. 지역구 사업과 관련해 A의원에게 돈을 줬다는 증인이 있어 A의원은 20일로 예정됐던 발표명단에서 도저히 빠질 수 없는 공천반대 대상자였다.

그러나 이 증인이 21일 증언을 갑자기 번복하는 바람에 상황이 역전됐다. 명단 발표일이 24일로 연기되지 않았다면 하루차이로 명단에 오를 뻔했던 아슬아슬한 상황.

고스톱의원으로 지목됐지만 재기 넘치는 소명자료를 통해 위기를 모면한 B의원은 ‘재치상’감. 국회 안에서 고스톱을 친 것으로 알려진 B의원은 소명자료를 통해 “내가 절대 국회에서 고스톱을 치지 않았다는 ‘의학적’인 증거가 있다. 나는 눈병을 앓았기 때문에 화투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알려와 총선연대 관계자들에게 실소를 머금게 했다.

호화외유경력으로 명단에 오른 C의원은 “‘적’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금언을 깊이 새겨야 할 듯. 총선연대 관계자들이 C의원의 호화외유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C의원과 함께 외유에 나섰던 동료의원이 C의원의 외유 행태를 조목조목 확인해줬기 때문. 이 바람에 “외국에 나간 일은 있었지만 ‘호화’외유를 한 일은 없다”는 C의원의 소명은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다.

7가지 선정기준 중 무려 5가지에서 혐의가 있었지만 결국 명단에서 빠진 D의원은 총선연대 관계자들로부터 ‘미꾸라지 의원’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5공때부터의 의정생활 경력과 각종 부정부패 의혹 및 고스톱의원이라는 소문 등 여러 영역에서 검토대상이 됐지만 단 한 분야에서도 확증을 남기지 않는 ‘묘기’를 발휘했다. 총선연대의 한 관계자는 “선정과정의 뒷이야기를 묶으면 책 한권 분량은 충분히 될 것”이라면서 “이는 그만큼 명단에 대해 정치권과 국민의 관심이 컸다는 증거”라고 자평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 '명단 음모론' 공방 ▼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자’ 명단에 포함된 국회의원들이 총선연대측에 강력한 항의를 제기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소송제기와 함께 명단작성의 배경에 대한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나서 명단발표에 따른 후유증이 커지고 있다.

나오연 박성범의원 등 국회의원 5명은 25일 시민연대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명단의 작성기준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며 강력히 항의했다. 차수명 서석재의원 등 국회의원 10명은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통해 해명자료를 시민연대측에 전달했다.

또 자민련과 일부 시민들은 시민연대가 명단작성 과정에서 일부 정치권과 결탁했다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총선연대측은 “아직도 정치권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비난했다. 서울대 법대 안경환(安京煥)교수는 “음모여부와 관계없이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며 “특정 정당이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음모론을 정치쟁점화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회사원 정민섭(鄭旻燮·30)씨 역시 “음모론을 제기하는 작태는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벼드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정치권의 자정능력이 없어진 지 오래된 만큼 국민이 무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컴퓨터통신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음모론을 둘러싼 논쟁이 제기됐다. 이병재씨(ID TT2000UU)는 하이텔을 통해 “음모론에 길들여진 한국사회에 또 하나의 음모론이 싹을 틔우는 것”이라며 “무슨 활동이든 첫 시작은 항상 부족한 만큼 지금은 격려의 목소리가 필요한 시기”라는 주장을 폈다.

한편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증권 사이트 포스닥홈페이지(www.posdaq.co.kr)에서는 명단에 포함된 의원들의 주가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김종필자민련명예총재의 주가는 명단발표 이전보다 1만800원이나 떨어진 5만6000원을 기록했다.

<이현두·이헌진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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