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돌린 옛동지 법정 舌戰

  • 입력 2000년 1월 8일 00시 36분


한때 대표적인 운동권 이론가였던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金永煥)씨와 사상적 동지였던 하영옥(河永沃)씨가 법정에서 증인과 피고인으로 만나 첨예한 이론논쟁을 벌였다.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사건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하영옥피고인(36)에 대한 5차 공판이 열린 7일 서울지법 311호 법정.

형사합의23부(재판장 김대휘·金大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는 하피고인과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았으나 반성문을 쓰고 전향, 지난해 11월 공소보류로 풀려난 ‘강철 서신’의 저자 김영환씨(36)가 증인으로 나왔다. 재판장인 김부장판사는 두사람의 특수관계를 감안, 이례적으로 하씨에게 김씨에 대한 직접 신문 기회를 부여했다.

하피고인은 “증인(김씨)은 민혁당 활동 당시 ‘목숨으로 조직을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정권 타도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며 생각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씨는 “북한이 남한보다 몇십 배 더 반민주-반인륜-반인도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하피고인은 또 “수사과정에서 관련자 30여명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배반이 아니냐”고 추궁하자 김씨는 “무마해주겠다는 수사기관의 말을 믿었을뿐 고의적으로 동지들을 밀고한 것은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이어 하씨가 “목숨을 걸고 지키자던 ‘당헌’을 어겼다”며 김씨를 ‘변절자’로 몰자 김씨는 “과거에도 민족을 앞세웠을뿐 북한정권을 수호한 적은 없다”고 맞섰다.

두사람은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생으로 92년 김일성(金日成)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결성된 민혁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며 사상적 동지로 지냈다.

김씨는 이에 앞서 진행된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 “국가정보원에서 가혹행위 때문에 불확실한 내용을 사실처럼 진술한 것이 있다. 국정원이 ‘검찰 조사에서도 그대로 진술하라’는 압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어떠한 가혹행위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24일 4차 공판 때처럼 법정 소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이날 하피고인의 가족과 취재진 등 30여명에게만 방청을 허용했다. 법정에 들어가지 못한 한총련 대학생 등 30여명은 법원 로비에서 “하영옥을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전경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