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 수사팀관계자 새사실 공개 시사

  • 입력 1999년 12월 17일 19시 23분


‘갈등, 반발, 진화, 봉합.’

박주선(朴柱宣)전대통령 법무비서관의 처리를 둘러싸고 빚어졌던 검찰 내부의 첨예한 갈등기류가 격렬한 진통과 극적인 반전속에 가까스로 진정됐다.

사직동 보고서 유출사건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이종왕(李鍾旺)대검 수사기획관이 16일 밤 사의를 표명하고 17일 출근을 거부한 것에 대해 한 검찰 간부는 ‘검찰의 마지막 승부수’라고 평가했다.

박전비서관의 처리방향을 놓고 ‘역풍(逆風)’의 조짐이 구체화되자 수사팀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검사 직(職)을 걸고 정면돌파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검찰내부의 이상기류는 11일부터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기획관의 행보가 심상치 않았다. 그는 기자들로부터 ‘바늘만한 틈도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을 아껴가며 신중하게 대처해오다가 11일 예정된 브리핑을 취소하고 갑자기 상기된 표정으로 일찍 퇴근해버렸다.

이기획관의 이같은 행동은 검찰 지휘라인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당시 검찰 상층부는 이기획관의 수사지휘에 불만을 품고 수사 검사들에게 기획관을 거치지 말고 직보(直報)하라고 했는데 이기획관이 “진실을 밝히자는 수사에서 나를 못믿으면 내가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며 자리를 떴다는 것. 이 사태는 검찰 간부들이 나서서 중재하고 시정을 약속함에 따라 수면밑으로 가라 앉았다.

이후 수사팀은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었지만 내연(內燃)은 더 커지고 있었다.

정치권에서는 박전비서관의 구명(救命)을 강하게 요구했고 검찰 수뇌부는 수사팀에 ‘신중한 수사’를 거듭 지시했다. 중부지역 출신인 한 수사검사의 원적(原籍)까지 거론하며 ‘특정지역 검사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음해성 루머까지 돌았다.

반면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결정적 물증도 확보됐다. 확인된 수사내용도 충격적이었다. 박전비서관이 옷 로비 사건 전반에 관여해 사직동팀 수사결과를 축소조작하고 대통령에게 허위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수사팀 관계자는 “박전비서관이 옷 사건을 조작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의 보도는 정확하다. 오히려 ‘축소보도’했다. 수사결과가 그대로 발표되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해 사법처리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공개될 것임을 시사했다.

수사검사들은 또 사직동팀 실무자들을 조사하면서 “당신들의 내사가 정확한 것에 놀랐다”며 “검찰이 경찰만도 못하다니 얼굴을 들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물증이 확보됨에 따라 박전비서관을 즉각 소환해 사법처리하자는 의견을 수뇌부에 전했다. 그러나 수뇌부는 “돌다리도 두드려보라”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수뇌부 사이에서도 미묘한 의견차이가 생겨 수사팀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이 3,4일 계속되자 수사팀은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을 품으며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기획관은 ‘주말을 넘길 수 없다’며 박전비서관 소환을 주장했는데 수뇌부는 확답을 하지 않았으며 일부에서는 거꾸로 수사팀에 강도높은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황에서 이기획관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일부 간부중엔 “수사기획관은 수사책임자가 아니다”며 이기획관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긴급진화에 나섰던 박순용(朴舜用)총장도 “이종왕은 정의감과 사명감이 강하다. 살려야 한다”면서도 “전쟁중에 빠지는 무책임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번 사태는 박총장이 17일 이기획관의 사의철회 발표와 수사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철저한 진상규명 등을 약속하면서 외견상 봉합됐다. 벌집을 쑤셔놓은듯 들끓던 분위기도 일단 가라 앉았다.

일선 검사들은 “바닥까지 간 검찰이 일어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앞으로 두고 보라”고 말하고 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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