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진 세종증권회장 구속]범행수법

  • 입력 1999년 8월 6일 01시 00분


세종증권 김형진(金亨珍)회장의 회사채 할인 비리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사채시장의 ‘큰손들’이 자금난을 겪던 기업들을 상대로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김회장은 돈이 급한 기업의 채권(회사채)을 헐값에 매입해 투신사의 채권 담당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비싸게 팔아 목돈을 벌었다. 영세기업으로부터 물건을 덤핑으로 매입해 백화점에 비싼 값에 파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훈규(李勳圭)서울지검 특수1부장은 “김회장은 금융시장의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말했다.

김회장 같은 채권브로커들의 채권매매 수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예를 들어 A기업이 표면금리 10%로 3년 만기인 100만원짜리 채권을 발행한다고 가정해보자. 만일 회사의 신용상태가 좋지 않거나 시중 자금사정이 어려우면 회사채를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틈을 이용해 채권브로커들이 나서서 회사채를 큰 폭으로 할인해 매입한다. 예컨대 A기업의 100만원짜리 회사채를 15% 할인해 85만원에 매입하는 것이다. 브로커들이 이 회사채를 투신사 등에 할인율을 10%로 낮춰 90만원에 되팔면 브로커는 단번에 5만원을 챙긴다. 이런 수법으로 회사채 1조원을 거래하면 500억원을 벌게 된다.

다만 외형상 거래는 기업의 회사채 발행→기관투자가(종금사 등)의 회사채 인수→투신사의 회사채 매입 등 합법적인 절차로 이뤄진다. 브로커(개인)는 채권인수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이 자격이 있는 종금사 등에 수수료를 주고 회사채 인수 및 판매를 맡긴다.

김회장은 이런 수법으로 ㈜신동방의 3년만기 보증 회사채 300억원어치(표면금리 17%)를 매매해 63억원을 벌었다. 그는 IMF직후 자금사정이 어려운 신동방의 회사채 300억원어치를 18%에 할인, 중앙종금을 내세워 202억여원의 헐값에 인수했다. 이 경우 실제 할인은 복리로 계산된다.

김씨는 이 회사채를 K투신 채권부장에게 1억원의 뇌물을 주고 할인율 5%로 계산, 267억원에 되팔았다. 순식간에 65억원을 번 것. 이 거래는 단 하루만에 서류상으로만 이뤄졌다.

김회장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거래를 외형상 합법적인 것으로 꾸며준 중앙종금에 수수료 2억원을 챙기도록 했다.

김회장은 이같은 수법으로 회사채와 국공채 1조7000억원어치를 거래해 모두 53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이같은 수법의 가장 큰 피해자는 높은 금리를 물게 되는 기업. 신동방의 경우 실질금리 35%(표면금리 17%+할인율 18%)를 물고 돈을 빌린 셈이 됐다.

또 투신사가 채권을 비싸게 삼으로써 투신사의 고객들도 ‘보이지 않는’ 손해를 입었다.

이같은 회사채 비리사건은 국내 채권시장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채권시장은 거래소에서 투명하게 매매가 이뤄지는 주식시장과는 달리 매도자와 매수자가 일 대 일로 매매하는 장외거래(over the counter)시장이다.

따라서 똑같은 채권이라도 매매당사자나 매매시점에 따라 매매가격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기관투자가가 브로커로부터 뒷돈을 받고 채권을 몰래 비싼 값에 매입할 여지가 있다.

〈이수형·이용재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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