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교육현장]학교에 스승과 제자가 없다

  • 입력 1999년 4월 4일 20시 08분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체벌을 당했다는 이유로 학생이 교사를 경찰에 신고하고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생겨나고 있다. 학생을 대하는 교사의 자세도 달라졌다. 애정은 사라지고 단순한 지식전수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추락하는 학교교육현장. 그 현상과 대책을 상중하로 살펴본다.》

지난달 중순경 서울 강북의 Y여고 홍모교사(35)는 쉬는 시간에 복도를 걸어가다 참담한 일을 겪었다. 마주오던 신입생이 홍교사는 외면한 채 함께 걸어가던 2학년 서클선배에게만 90도 각도로 깍듯이 인사를 했던 것. 홍교사는 “이런 일은 유독 나만 당하는 일이 아니다”며 “요즘 그런 꼴 안 당하기 위해 눈을 밑으로 깔고 다니는 교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강남 D고의 모 체육교사는 지난해말 1학년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떼지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이 녀석들, 다 튀어나와”하며 한 학생을 끌어냈다. 순간 그 학생은 교사의 팔목을 붙잡고 “왜 이래요. 선생님도 담배 피우면서 왜 우리한테만 야단이에요”라고 맞고함을 지르며 위협적인 자세로 나왔다.

드물게 일어나는 특수한 케이스가 아니다. 교사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교사를 두려워하던 옛날 학생들의 자세는 사라져가고 대신 도발적이고 교사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신(新)학생’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강북 S중학교 고모교사(29)는 “요즘은 회초리라도 들어서‘인간을 만들겠다’고 발벗고 나서기보다는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실토했다. 교사의 제자들에 대한 열정도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식어버린 열정은 학생들에 대한 냉소로 이어진다. 강북 M여중 3학년 홍모양(15)은 “신체를 때리는 체벌은 줄었는지 몰라도 대신 언어폭력과 정신적 폭력은 부쩍 늘었다”고 털어놓았다. 말을 안듣는 학생에게 대뜸 “저능아” 또는 “정신병자”라며 모욕을 주는가 하면 수업태도 불량 등 사소한 일에도 벌점을 주면서 “너희들이 원한 게 이게 아니야”라며 비꼬듯 말하는 교사들이 상당수라는 것.

존경과 애정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할 사제지간이 왜 이렇게 됐을까. 일부 교사들은 “지난해 촌지 과외 체벌금지 등 일련의 교육개혁 과정에서 교사들이 부패한 범죄집단처럼 묘사되면서 교사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사와 학생의 서로에 대한 인식과 이해엔 엄청난 괴리가 존재한다.

강남 J여고 김모교사(43)는 “예전엔 문제학생이라도 빈곤이나 가정불화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쉽게 그 원인을 알아내 접근하는 것이 가능했던데 비해 요즘엔 ‘문제’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 데다 이들이 교사와 ‘마음의 벽’을 쌓고 있어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주장은 전혀 딴판이다.

자신들이 꿈꾸는 백댄서나 가수같은 이야기를 꺼내면 교사들은 “무슨 허황된 얘기냐”는 반응을 보인다는 게 학생들의 주장. 그저 ‘대학’밖에 모르는 교사들께 우리의 고민을 털어놓아봤자 부모님께 알려져 쓸데없는 고생만 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둘러대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반에서 3,4등을 다투는 강남 D고 2학년 박모군(17)은 “선생님들은 컴퓨터 힙합 여자친구 등 우리들의 주요 관심사는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인생의 관리자인 척한다”며 “오히려 공부에 관해서라면 학원선생님들이 훨씬 낫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사이버공간과 미디어를 타고 질주하는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엔 교사들의 ‘대학중심의 낡은 사고’는 너무 초라한 울타리인 셈이다.

〈권재현·박윤철·이완배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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