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시인 반 아이들, 동시집 「학교야, 공차자」펴내

  • 입력 1999년 2월 9일 19시 05분


아홉살 동수는 며칠 후면 제 이름의 시집 한 권을 갖게된다. 시집 제목은 ‘학교야, 공차자’(보림). 동수와 한 학교에 다니는 형 누나 동생, 그리고 지난해 졸업생까지 18명이 함께 만든 시집이다.

동수네 학교는 전북 임실군 운암면 운암초등학교 마암분교. 섬진강이 호수처럼 내려다보이는 산골에 있다. 한때는 7개의 교실이 아이들로 북적거렸지만 지금은 전교생 열여섯 명의 작은 학교다.

동수의 담임은 김용택선생님. 2학년과 5학년 여섯 명을 함께 가르친다.

선생님은 3학년 진철이가 쓴 것처럼 ‘매일매일 신문에도 나오고 또 텔레비전에도 나오는’ 유명한 시인이지만 눈싸움을 할 때도 축구 야구를 할 때도 져주거나 봐주는 법이 없어 시인이 아니라 개구쟁이 친구같다. 그래도 마암분교 아이들이 시집 한 권을 갖기까지는 선생님의 뒷바라지가 있었다. 아이들은 지난해 봄부터 선생님의 제안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다섯편씩 시를 썼다.

선생님은 시쓰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너희들이 집에서 생활하는거, 보고 느끼는 것을 써라”고 할 뿐이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맞춤법이 틀려도 “잘 썼네”하고 크게 동그라미를 쳐 준다.

‘물고기를 잡자 큰 고기 작은 고기 큰 고기는 잡아서 팔고 작은 고기는 키우자 고기를 잡자 고기를 잡아 아버지 어머니 온가족에게 주자 작은 고기는 어망에 키우고 큰 고기는 팔자.’

장난이 심해서 하루에도 몇번씩 “똥수야, 이놈”하고 선생님께 야단을 맞는 동수는 이 시를 쓴 날 크게 칭찬을 들었다. 선생님은 동수가 놀이삼아 고기잡이 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손바닥만한 밭을 부치며 섬진강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에 보태는 동수네 살림에는 어린 동수의 노동이 큰 보탬이 된다.

동수네 학교는 ‘폐교 대상’이다. 학생수가 분교설치령의 정원 기준인 20명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학부모들이 폐교를 막고 있지만 선생님은 알고 있다. ‘이제 이 땅에 더 이상 이렇게 작은 학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농촌아이들의 정서가 그대로 담긴 글도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시대가 됐다’(‘서문’ 중)는 것을.

졸업식날인 19일 시집이 세상에 나오면 마암분교 아이들과 김용택선생님은 전주 시내로 자장면을 먹으러 갈 것이다. 누구는 가수 누구는 운동선수 삼겹살집 주인이 되겠다고 하지만 선생님처럼 시인이 되겠다는 아이는 아직 없다.

그래도 선생님은 서운하지 않다. 먼훗날 아이들이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어른이 되어갈 때 고향의 강과 집 벌레 꽃들로 시를 썼던 어린 마음을 잊지 않을 수만 있다면….

〈임실〓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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