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들 불황에 떤다…「고시합격 실업」 생길판

  • 입력 1998년 11월 3일 19시 31분


변호사 업계가 전례없는 불황에 떨고 있다.

사무실 유지를 위한 기본경비도 벌지 못해 빚더미에 오르거나 사무실 문을 닫는 변호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임대료를 못내 건물주에게 사무용품 등 집기 일체를 압류당한 변호사도 있다.

여전히 호황을 누리는 일부 변호사도 없지는 않으나 대다수의 변호사에게서 ‘변호사 개업은 돈방석’이란 등식이 무너진지 이미 오래다.

서울지법 동부지원 앞에서 94년 초 개업한 A변호사(31). 그는 9월말 변호사 사무실 문을 닫았다. 건물 주인에게 책상 등 집기를 모두 압류당하는 수모도 참을 수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더이상 사무실을 운영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임대할 당시 건물주에게 줬던 보증금 5천만원은 월 2백만원의 임대료와 관리비 70만원을 못내는 바람에 모두 까먹었다.

서울 서초동에서 개업한지 4년째인 B변호사(33)는 올 9월말 사무실 문을 닫고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며 지방 K시로 내려갔다. IMF 이후 수임한 사건이 거의 없어 사무실 보증금 1억원을 모두 날렸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사법시험 33기 합격생(91년)3백여명 중 변호사를 개업한 1백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올들어 IMF 경제난으로 절반 가량이 손익분기점(월 2천만원) 이하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례없는 변호사 업계의 불황은 변호사수의 급증과 영장실질 심사제 실시에 따른 구속자 감소, 그리고 IMF 경제난의 영향 때문.

10년전인 88년 1천6백66명이었던 변호사 숫자는 올 10월말 현재 3천5백26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영장실질심사제 도입 이후 전국의 구속자는 96년 14만3천68명에서 97년 11만8천5백76건으로 17.1%가 감소한데 이어 올해도 지난해보다 더욱 감소하고 있는 상태.

이처럼 변호사 업계 환경이 악화되자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해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고용변호사’로 법무법인 법률회사(로펌)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사법연수원 가재환(賈在桓)원장은 “내년 1월에 졸업하는 사법시험 38기생 4백86명중 2백여명이 변호사사무소를 개업할 예정”이라며 “그러나 지방도 이미 변호사가 만원인데다 로펌 등도 기업 구조조정 이후 일감이 줄어 변호사 신규채용이 거의 없는 실정이어서 내년엔 ‘첫 고시생 실업자’가 나올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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