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호우피해 현장]암흑속 빗줄기 「악몽의 휴일새벽」

  • 입력 1998년 8월 9일 20시 27분


8일 밤부터 9일 새벽까지 3백㎜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충남 당진 주민들은 “엎친데 덮친다더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늘을 원망할 기력조차 없는 듯했다.

한보사태의 여파로 지역 중견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져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수해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9일 오전 11시경 당진읍내 상설시장. 상인들은 전날 밤 당진천이 범람해 흙탕물이 상가를 덮치는 바람에 쓰레기가 돼버린 물건들을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채 한숨만 지었다.

서당지업사 주인 서동식씨(38)는 “벽지 등 버린 물건이 2천만원어치가 넘는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당진 주민들은 8일 밤을 ‘악몽’으로 기억했다.

하늘이 구멍난 듯 쏟아진 폭우도 폭우지만 천둥번개로 밤 10시부터 전기와 전화가 끊겨 연락도 못하고 촛불과 랜턴에 의지해 장대비 속을 헤매야 했다.

당진군 재해대책본부관계자는 “소방파출소에 경고사이렌을 부탁한뒤 가두방송에 나섰다가 방송차량이 물에 잠겨 오도 가도 못했다”고 말했다.

당진읍과 송악면 등의 들녘에는 농민들의 한숨소리가 넘쳤다.

농민들은 점선처럼 드문드문 보이는 길을 더듬어 가까스로 논을 찾았으나 황토물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손을 쓸 방법도 없어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황토가 뒤덮인 벼는 씻어내도 쭉정이만 남아요. 올 가을 자식들에게 쌀이라도 한가마 보내려 했는데 그도 틀렸나 봐요….”

논 11마지기 가운데 7마지기가 물에 찼다는 김의웅씨(66·당진읍 원당리)는 연방 담배만 피워 물었다.

산사태로 두 곳이 매몰된 당진읍 용연리 당진∼서산간 국도에서는 9일 오후 복구작업이 시작됐으나 작업속도가 늦어 차량들이 길게 줄을 섰다.

당진에서는 당진읍과 대호지면 등의 산사태로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으며 2명이 부상했다.

또 농경지 4천5백㏊, 가옥 1천5백동이 침수됐으며 4곳의 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당진군 기업인협의회 최치운(崔治運)사무국장은 “한보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해까지 겹쳐 주민들이 시름에 빠져 있다”며 특별 대책을 호소했다.

한편 충남 서산 태안 천안 아산 등에서도 비피해가 속출했다.

천안의 경우 8일 오후 11시경 성환역 부근의 철로가 침수돼 4시간 가량 경부선 운행이 중단됐다.

농경지 침수도 잇따라 태안은 안면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농경지가 침수되는 등 충남 전지역에서 1만7천여 ㏊가 물에 잠겼다.

또서산∼해미,서산∼지곡 등의 도로 8곳이 두절됐으나 장비부족 등으로 복구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충주댐관리사무소는 “9일 오후 4시 현재 충주댐의 수위는 1백39.18m로 홍수제한 수위(1백45m)까지 상당한 여유가 있어 수문을 열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당진〓지명훈기자〉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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