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勤所稅부과 논쟁]「자진반납 임금」 세금은 누가 내나?

  • 입력 1998년 4월 19일 19시 25분


‘임금을 자진 반납하면 세금은 누가 내야 하나.’

최근 많은 기업들이 근로자의 자진 반납형식으로 임금을 대폭 삭감하면서 반납분에 대한 근로소득세 부과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임금을 삭감하든 반납하든 근로자가 손해를 보기는 마찬가지.

임금삭감의 경우엔 내년도 임금협상의 베이스가 낮아지고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하는 퇴직금까지 크게 줄어든다.

기업마다 사정은 약간씩 다르지만 근로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임금반납에 동의한 것도 그나마 삭감보다는 반납쪽이 손해를 덜 보기때문.

임금반납은 일단 근로자가 임금을 수령했다가 일정액을 회사에 반납하는 형식을 취해 봉급베이스가 유지되고 퇴직금에서 불이익은 덜보지만 문제는 매달 발생하는 근로소득세.

임금반납은 일단 지급된 임금을 도로 내놓는 것이기 때문에 세법상 10∼40%에 이르는 근로소득세가 누진적으로 발생한다. 즉 근로자들은 타의에 의해 임금을 사실상 삭감당하고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임금에 대해 근로소득세를 물어야 하는 ‘억울한’ 상황을 맞은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에선 노사간에 임금삭감 형식을 어떻게 처리할지, 임금반납분에 대한 세금은 누가 내야 할지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 있다.

일부 기업에선 정부의 근소세 감면조치를 기대하며 아예 근소세 원천징수를 뒤로 미루는가 하면 퇴직금을 깎지 않으면서도 부과된 세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갖가지 편법까지 동원하는 등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전임직원 임금의 20%를 삭감한 A사의 경우 노조측이 “받지도 않은 임금에 대해 세금을 낼 수 없다”며 반납임금에 대한 세금을 회사측이 대신 납부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올해 총 임금반납분 근로소득세로만 30여억원을 내야 하는 A사는 아직까지 반납처리문제를 결정하지 못하고 지급유예상태로 두고 있다.

지급유예는 지급해야 할 상여금 등을 실제 삭감했으면서도 장부상엔 일정 기간 지급을 미룬 것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급유예는 노동법 위반사항인 종업원 임금체불에 해당돼 적발될 경우 처벌을 받기 때문에 외부에는 비밀로 했다.

임직원 임금의 40%를 삭감한 B그룹은 세금 회피를 위해 일단 임금삭감으로 처리했지만 노조와는 삭감전 임금으로 퇴직금을 산정한다는 이면합의를 했다.

회사측은 약속이행을 몇번이고 다짐했지만 노조측은 ‘퇴직금마저 삭감당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한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C사의 경우는 매달 회사측이 세무당국에 신고하도록 돼 있는 원천징수 작업을 아예 뒤로 미뤄놓고 있는 상황.

임원 임금 30%, 사원 임금 15%씩 자진반납한 이 회사는 최악의 경우 회사가 대신 세금을 납부할 방침이지만 근로자가 내야 할 세금을 대신 납부할 경우 또다시 증여세가 부과될까봐 걱정하고 있다.

원천징수 신고의무 불이행시에는 10%의 가산세를 내야 하므로 C사는 뚜렷한 지침을 마련치 못해 가산금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C사의 한 간부직원은 “근로자의 퇴직금이 삭감되지 않도록 배려해 임금반납형식을 선택했어도 근로자입장에선 실제적으로 근로소득이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근소세는 면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세무당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국세청 관계자는 “근로자가 임금을 받지 않고 그대로 반납해 사실상 소득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도 세법상으론 소득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되어 근소세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며 “어려운 처지는 이해하지만 세법을 무시하고 세금을 면제해줄 수 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설령 세법의 규정이 그렇다고 해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부득이한 상황을 정부가 충분히 헤아려 세금감면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은 “도산위기에 내몰린 기업들이 경제난 극복을 위해 근로자 임금을 반납받아 재무구조 개선에 쓰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세금까지 내라니 너무 가혹하다”며 세무당국에 근소세 면제를 건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영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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