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권영해씨 수사 『미적미적』…정치논리로만 접근

  • 입력 1998년 3월 30일 19시 59분


김대중(金大中)정부 출범 직후 정국을 강타한 ‘북풍(北風)조작사건’에 대한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다.

‘국기(國基)’를 뒤흔들 정도의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북풍사건은 권영해(權寧海)전안기부장의 할복소동 이후 정치논리에 밀리면서 ‘잠수(潛水)’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적과의 동침’ 의혹까지 불러일으킨 북풍사건이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물론 검찰과 안기부는 ‘조용한 수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하고 있다. 윤홍준(尹泓俊)씨 기자회견 조작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은 윤씨와 이대성(李大成)전안기부해외조사실장 등 안기부직원 3명을 구속했으며 금주중 권전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다. 하지만 권전부장에 대한 수사가 지연되면서 별다른 수사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익제(吳益濟)씨 편지사건에 대한 검찰수사는 아직 착수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검찰은 당초 서울지검에서 이 사건을 수사할 방침이었지만 인사태풍으로 어수선한 안기부의 자체조사 결과가 넘어오지 않아 손을 놓고 있다. 김장수 김병식의 편지사건이나 96년 4·11총선때 북한군의 비무장지대(DMZ)난입사건도 마찬가지다.

안기부의 자체조사 결과도 무소식이다. 안기부는 16일부터 감찰실 직원과 수사국 요원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자체조사를 벌여왔지만 국민회의 의원들에 대한 형식적 조사만 마무리했을 뿐 본격적인 수사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안기부는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없다”거나 “진상조사와 사법처리는 별개”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북풍사건 수사를 정치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정치권 역시 북풍사건수사 결과에 대한 부담과 정국경색을 우려, 자신들을 겨냥한 수사를 원치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여권은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여소야대 정국을 풀어나가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정치적 여건에 따라 수사확대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현재 안기부는 북풍사건 수사과정에서 구여권 고위인사 측근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부는 이 물증을 바탕으로 안기부 내부 직원들에 대한 진술확보에 주력하면서 이 고위인사 측근에 대한 내사를 벌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안기부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다녀온 뒤에야 정치권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정치적으로 판단할 일”이라고 말해 수사착수여부에 대한 내부원칙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정재문(鄭在文)의원의 대북커넥션 의혹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열쇠를 쥔 재미교포 김양일씨의 귀국이 늦어지면서 안기부 조사는 제자리걸음이다.

수사기관의 이런 태도에 대해 재야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서는 “북풍사건은 정치적으로 재단할 성격의 사건이 절대 아니다”며 정치권에 쏠린 의혹을 풀기 위한 투명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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