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은 위험』…고금리시대 은행찾는 퇴직자 는다

  • 입력 1998년 3월 20일 20시 08분


돈이란 돈은 은행에만 몰리는 고금리 시대. 모처럼 목돈을 받아든 퇴직자들도 새 사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장사를 해야 할 상인들은 가게 빼기에 바쁘다. 거래는 실종된 채 고금리 상품만에만 몰리는 경제적 ‘복지부동(伏地不動)’.

송파구 가락본동에서 10년째 부동산을 운영해온 김모씨(59·공인중개사)는 최근 영업을 포기했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매기가 사라져 매달 35만원의 월세를 내느니 차라리 집에서 쉬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권리금(1천만원)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보증금 1천5백만원만을 간신히 챙겨 은행 확정금리 상품에 투자했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10개 상가중 9개가 같은 사정으로 가게를 내놓거나 문을 닫은 상태.

지난달 퇴직금 1억1천9백만원을 받고 20년간 다니던 중소기업을 그만둔 유모씨(47). 퇴직금 전액을 투자신탁의 1년만기 확정금리 상품에 맡겨놓고 매달 이자로 1백19만4천원을 받는다.

고교 2학년 딸아이를 생각해서 작은 김밥집이라도 차리려 했지만 몇군데 알아보고 나서는 “가만히 있는 게 돈버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퇴직금과 전재산을 합쳐 지난해 가을부터 경기도 구리시에 5층 상가를 짓기 시작한 김모씨(60)는 최근 공사를 일시 중단했다. 노후보장 차원에서 상가를 짓기로 했지만 요즘같은 불황에 건물을 지어봐야 분양이 안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IMF이전인 지난해 11월 각 은행 정기예금 총액이 45조8천2백억원에서 지난달말 67조6천3백43억원으로 무려 47.6%나 증가했다.

서울대 경제학부 이지순(李之舜)교수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고금리를 보장하는 금융권으로 돈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며 “그러나 돈이 순환되지 않고 은행 금고에 잠겨 있는 것은 경제 회복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훈·하정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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