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뭔가요』…본보취재팀,강남「무풍지대」 잠입르포

  • 입력 1998년 1월 3일 21시 16분


이곳은 국제통화기금(IMF)의 무풍지대. 나라가 결딴이 나든 말든,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일어서자고 외치든 말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이솝이야기’라는 듯한 광경이다. 2일 밤 서울 강남의 한 고급 나이트클럽.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물좋은 곳’으로 소문난 이곳은 초저녁부터 몰려드는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밤 9시반경. 입구에서 벌써부터 실랑이가 벌어졌다. “자리가 다 찼습니다.”(종업원) “그러지 말고 한자리 내줘요. 단골한테 너무하네….”(고급승용차를 몰고온 20대 초반의 남자) 실랑이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2천㏄ 이상급 승용차와 외제 스포츠카가 속속 도착, 도로변에 1백m 가량 늘어섰다. 빈 자리가 있으면서도 ‘유명세 관리’를 위해 자리가 없다고 하는거겠지 했던 짐작은 홀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여지없이 무너진다. 입구 근처 보조좌석까지 이미 빼곡이 들어찼다. “평일에도 빈 자리가 없다”고 한 웨이터가 귀띔을 해준다. 2백여석에 5백여명은 족히 돼보이는 젊은 손님들은 부지런히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술은 값비싼 외산 양주가 많고 국산 양주도 눈에 띈다.벌써 한 병을 다 비웠는지 연방 웨이터를 불러대는 대학생, 웨이터의 손에 이끌려 남자손님이 있는 테이블을 전전하는 여자들, 스테이지에 간신히 발을 걸친 채 사이키조명 불빛 아래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대는 젊은이들…. 이들의 표정에서는 IMF의 ‘I’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열흘 전쯤부터는 방학을 맞아 일시 귀국한 ‘해외유학파’가 가세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외국에서 쓰다 남은 달러로 계산, ‘환차익 만큼의 환락’을 더 즐긴다. 외국에서 만든 신용카드로 계산하는 이들도 있다. 외국으로 돌아가면 달러로 결제하기 때문에 똑같은 액수의 달러라도 지난해 방학 때보다 곱절은 더 효용가치가 있기 때문. 미국 유학생 박모씨(24)는 이같은 분위기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유학생들은 매일 인터넷으로 한국신문을 보면서 한국 걱정을 합니다. 한국이 ‘전시(戰時)상황’이라는 생각까지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이곳에 와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이 이래서 이 지경이 된 것 같아요.” 나이트클럽 영업은 3일 오전 2시가 돼서야 끝났고 일부 젊은이들은 ‘또다른 환락’을 찾아 차를 몰았다. 〈금동근·박정훈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