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성공기업/두레 에어메탈]빚더미속 기술자 해외연수

  • 입력 1997년 11월 5일 19시 47분


《기업 부도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법정관리 업체가 1백90개를 넘다보니 「법원이 최대의 재벌」이라고 외국 언론이 꼬집어도 할말이 없다. 일단 좌초하면 회생이 어렵다. 그러나 뼈를 깎는 정상화 노력으로 지옥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기업도 있다. 이들의 현장을 찾아가본다.》 『9월18일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알루미늄휠 항공기부품 등을 생산하는 두레에어메탈(구 삼선공업) 임직원 5백여명에게 이날은 광복의 날.당초 99년10월로 잡혀있던 법정관리 종결시한을 2년 앞당겨 이날 법정관리에서 「해방」돼 남부럽지 않은 정상적 기업으로 다시 탄생시켰기 때문. 83년 구 삼선공업이 무리한 투자로 쓰러져 1백64억원의 빚을 떠안고 법정관리의 운명을 맞았을 때만해도 회사 회생은 꿈도 꾸지 못했다.그러나 지금은 단지 경영 정상화에 성공한 정도가 아니라 아시아 최고의 항공기 부품업체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부도 당시 62억원에 불과했던 연간 매출을 작년에는 그 열배도 넘는 7백68억원으로 끌어올렸다. 또 아시아 최초로 보잉, 록히드 등 미국5대 항공기 메이커로부터 알루미늄부품의 생산품질인증을 따내 수출 활로를 활짝 열었다. 회사가 본격적으로 회생 과정에 들어선 것은 김을태(金乙泰·57)현회장이 83년 부실덩어리의 이 업체를 인수해 법정관리를 맡으면서부터. 약사 출신으로 의약품 수입회사를 경영해오던 그는 법정관리인이 된 뒤 3년간 구로동 공장에서 근로자들과 숙식을 함께 했다. 그러면서 회사의 장래를 불안해 하던 사원들의 자신감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주력했다. 김회장은 『어차피 갈 데까지 간 회사이니 죽기 살기로 한번 해보자고 사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초기 업무의 전부였다』고 말했다.회사를 떠나려는 기술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인력개발과 복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병역특례 요원으로 입사한 젊은 엔지니어들의 해외연수를 적극 추진하자 주위에서는 『곧 떠날 사람들에게 괜한 투자를 한다』며 그를 질책했다. 그러나 이들 엔지니어야말로 세계적 항공사들로부터 생산품질인증을 받아내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핵심 기술진이 됐다. 그의 신념에 찬 기업회생 노력은 근로자들의 적극적 협조를 이끌어냈다. 86년 설립된 노조는 지금껏 한번도 분규를 일으킨 적이 없다. 오히려 경영진과 머리를 맞대 기술개발과 생산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85년 부가가치가 낮은 알루미늄새시 사업을 정리하고 자동차 알루미늄휠을 양산하기 시작한 것도 적중했다. 채권은행과 법원에서는 『빚더미속에서 무슨 추가투자냐』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냈다. 국내 자동차업체들도 당시 사용하던 스틸휠을 알루미늄휠로 바꿀 필요가 없다며 버텼다. 그러나 김회장은 은행과 법원에 신규사업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사원들은 직접 거리로 나서 알루미늄휠의 우수성을 알렸다. 때마침 불어닥친 마이카붐을 타고 알루미늄휠의 매출이 급증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각 완성차업체의 1차 협력회사로 선정됐다. 『정도(正道)를 벗어나고 분수를 지키지 않으면 회사가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앞으로도 법정관리 때의 고통을 잊지않고 전사원들과 한덩어리가 돼 세계적인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겠습니다』 지난달 회사 이름을 두레에어메탈로 바꾼 김회장의 의지가 확 와닿는다. 〈이영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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