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없는 소음]쉿! 『조용히 살고싶다』

  • 입력 1997년 10월 6일 08시 00분


지난 봄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으로 이사한 주부 장경숙(張慶淑·31)씨는 고민끝에 1년 전세계약을 깨고 이달중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큰길에서 한참 들어가는 K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수없이 지나다니는 열차의 소음에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 열차 외에도 마을버스의 엔진소리, 좁은 골목에서 울려대는 경적, 주차시비 등 시끄러운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같은 동네에서 12년째 살고 있는 주부 한숙자(韓淑子·55)씨. 출퇴근 시간이면 TV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한밤중에도 엄청난 속도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화물차들 때문에 잠을 깰 때가 많다. 근처 유흥가에서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하는 사람들도 만만찮은 소음원이다. 『30만원을 주고 이중창을 달았지만 소용없어요. 하도 답답해 서울시에 신고도 해보고 반상회에서 의논도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더라구요. 이젠 포기하고 살아요』 도로변 아파트나 주택가 주민들은 이처럼 밤낮없이 소음공해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자동차가 줄어들지 않는 한 뾰족한 대책도 없다. 최근 서울시는 도로와 주택가 사이에 ㎞당 7억∼9억원의 거금을 들여 방음벽을 설치했지만 소음도는 평균 7㏈ 정도에서 더 줄어들지 않았다.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 근처 마을에서는 비행기 소음에 이 시끄러운 차소리도 묻혀버린다. 서울 양천구 신월7동에 사는 주부 허양금(許良今·35)씨는 『비행기가 지나갈 때는 지진이 난 것처럼 창문이 심하게 흔들리고 전화와 TV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면서 『이곳에서 11년간 사는 동안 하루에도 수십번씩 귀가 멍멍해지는 바람에 양쪽 귀가 잘 안들린다』고 털어놨다. 신월7동 신월시영아파트 관리과장 이중모(李仲模·47)씨는 『88년 이 아파트가 생긴 이후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항공기소음 대책 마련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10년이 지나도록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어린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도 무방비 상태로 엄청난 소음에 노출돼 있다. 서울 강서구 화곡1동 공항 주변의 월정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날씨가 흐릴 땐 비행기 소리가 더 크게 들려 이렇게 손으로 귀를 막아야 해요』 교육부가 마련한 학교시설 환경기준에 따라 교실 소음은 55㏈이하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곳은 75㏈을 오르내린다. 안귀수(安貴洙)교장은 『문을 열고 수업하는 여름에는 뒷자리 아이들의 경우 교사의 말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뿐만 아니다.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권철현(權哲賢)의원은 국정감사 자료에서 『부산지역은 잘못된 도시계획으로 심각한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시내 1백35개 고교를 대상으로 소음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14개 고교의 학생과 교사들이 두통 어지럼증 불쾌감 등의 소음피해를 보고 있다고 했다. 권의원은 『피해가 극심한 곳은 역학조사를 거쳐 학교의 이전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윤종구·정위용·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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