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교포 「사기」에 운다-피해실태…현지 긴급취재]

  • 입력 1996년 11월 30일 20시 13분


『북경의 한국영사관에 쳐들어갈 결사대조직을 서두르고 있다. 5천명을 동원할 것이다. 영사관 철문이 가로막으면 철문을 뿌리째 뽑아버릴 각오다』 한국인 사기꾼에게 당해 졸지에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은 조선족 피해자들의 한국정부와 한국인에 대한 분노는 폭발 직전에 이른 느낌이다. 30일 기자와 만난 피해자협회 간부들은 북경의 한국대사관이나 영사관에 몰려가 점거시위를 하겠다는 게 결코 엄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만약 금년말까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면 극단적인 실력행사밖에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어차피 죽을 지경인데 원수를 갚고 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초청사기사건으로 촉발된 조선족사회의 반한감정은 일부 흥분한 사기피해자들 사이에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한국인만 나타나면 때려죽이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조돼 있다. 기자가 피해자협회측에 사기사건 취재를 위해 피해자의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하자 『혼자서는 위험하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경고할 정도였다. 피해자 金東賢(김동현·61)씨는 『요즘 한국인에 대한 호칭이 한국분에서 한국놈으로 바뀌었다』며 한중수교 직후 존경의 대상이었던 한국인이 지금은 증오의 대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조선족들 가운데는 지난9월 페스카마호 선상반란사건으로 구속된 조선족선원들이 만약 사형이라도 당하면 한국인에게 보복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인에 대한 조선족사회의 시각이 싸늘해져가고 있는 것은 비단 이번 사기사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그동안 관광객들이 대거 몰려와 돈을 마구 쓰고 조선족을 업신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도 한 요인이다. 또 매춘 등 풍기를 해치는 행태도 현지인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연길시공안국에 근무하다 사기를 당해 휴직중인 허호군씨(35)는 『작년7월 집중단속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연길에 7백여개소의 가라오케가 성업중이었다』며 주로 이곳을 통해 한국인의 불법적인 매춘행위가 자행돼 조선족사회의 지탄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국인이 많이 들어와 있는 북경 천진 청도 대련 등지의 한국인상대 술집과 가라오케 등 유흥가로 동북3성의 농촌처녀들이 대거 빠져나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조선족사회는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인과 조선족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분위기를 망쳐놓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인과 조선족의 문화 관습 업무자세의 차이도 양자관계를 멀어지게 한 주요인으로 꼽힌다. 사회주의체제에서 생활해온 조선족은 평등의식이 강한 반면 생산성이 떨어져 중국진출 한국기업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한 조선족청년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노동강도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최근 한국인사기사건으로 인해 반한감정이 고조되면서 연변 등지의 한국인사회도 내심 마음을 졸이고 있다. 연길의 한신공영 신형수총경리는 『우리회사는 아직 특별한 문제는 없으나 조선족사람들의 밑바탕에는 한국에 대한 반감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족사회의 반한감정은 특히 사기사건의 피해자가 집중돼 있는 중하위계층에 팽배해 있다. 이들은 한국인사기꾼들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마음만 먹으면 중국방문을 할 수 있지만 자신들의 한국방문은 까다롭게 해 결과적으로 사기사건이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더욱이 사기를 당해도 범인을 찾으러 한국에 갈 수도 없지 않으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조선족사회의 반한감정은 초청사기사건의 처리여하에 따라 중대한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보상과 사기꾼처벌 등 요구조건이 무시되면 무언가 사단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라는 게 피해자들의 이구동성이다. <북경=황의봉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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