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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많은 이들이 첫 해돋이를 보며 묵은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소망을 기원했다. 한시에서 일출은 개인적 바람과 연관되기보다, 자연의 순환을 통해 삶의 유한성을 성찰하는 과정에서 자주 등장한다. 당나라 이백은 일찍이 이렇게 노래했다.이 시는 한나라 악부(樂府) ‘일출입(日出入)’을…

조선시대 최립(崔岦)은 화가 이정(李楨)에게 가을 풍경을 그리게 하며, ‘왜 아름다운 광경은 모두 저물녘에 모여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그는 “석양이 한없이 좋지만, 다만 황혼이 가깝구나(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란 시구를 떠올리며, 석양빛 물드는 황혼의 정경이 즐거우…

낙유원(樂遊原)은 장안(長安)의 고지대로 주변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였다고 한다. 이곳을 자주 찾던 당나라 이상은은 어느 우울한 날 석양 무렵의 감회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시인은 난해한 시를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이 시에선 눈에 들어온 석양빛에 대한 감상만을 명료하게 쓰고 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순응자’(1970년)에서 주인공 마르첼로가 정상인이 되기 위해 권력에 순응하여 정치적 암살에 협력했다면, 조선 후기 목호룡은 자신의 신분적 결함을 메우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정치적 음모에 가담했다. 목호룡이 1722년 노론이 경종을 시해하려 한 역…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룸 넥스트 도어’(2024년)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마사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죽은 사람들(The Dead)’을 떠올린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죽음 앞에서 많이 떠올린 시는 도연명의 자만시(自挽詩·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였다(칼럼 29회 ‘나의 첫 번째…

우디 앨런 감독의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년)에는 난폭한 마피아 조직원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희곡 작가로서 천부적 재질을 보여주는 치치가 나온다. 젊은 시절 무뢰한이었던 김만최(金萬最·1660∼1735)도 시에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였는데 다음 시도 그중 하나다.의원 집안 출신의 …

천카이거 감독의 ‘현 위의 인생’(1991년)에서 시각장애인 제자는 역시 눈이 보이지 않는 스승에게 별들은 어떤 모양이냐고 묻는다. 스승은 자신도 본 적이 없기에 하늘에 있는 폭포 같다고 했다가 돌 같기도 하다고 대답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기도 어렵건만 다섯 살 때 눈이 먼 …

평생 눈병으로 고생한 고려 시인 이규보(1168∼1241)는 눈병에 대한 시를 여러 수 남겼다(‘又傷目病’ 등). 하지만 정작 눈병에 대해 인상적인 시를 남긴 건 이규보와 나이를 뛰어넘은 우정을 나누었던 오세재(吳世才·1133∼?)였다.오세재는 이 무렵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했다(‘破…

박제범 감독의 ‘집 이야기’(2019년)에서 혼자 서울살이 하는 주인공 은서는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몇 번째 집이냐는 부동산 중개사의 질문에 은서는 여섯 번째인가 일곱 번째 이사라고 답한다. 정주(定住)가 쉽지 않은 현대인들처럼 옛사람들도 안정된 집을 찾아 이사를…

한시의 이미지는 단순한 실재의 반영에 그치지 않고 시인의 미래를 암시하는 징조로 해석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남용익(南龍翼·1628∼1692)의 시에 나오는 나비도 그런 예 중 하나다.시는 알에서 태어난 누에가 애벌레가 되어 자란 뒤 고치를 지어 나비(실제론 나방)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

자식의 죽음을 다룬 영화 중에 문희융 감독의 ‘늙은 자전거’(2015년)는 죽은 아들이 남긴 손자와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그 슬픔을 풀어간다. 조선시대 홍양호(洪良浩·1724∼1802)가 세상 떠난 아들을 애도하며 쓴 연작시에서 어린 손자에 대해 읊은 내용을 연상시킨다.시인은 수려한 …

네메시 라슬로 감독의 영화 ‘사울의 아들’(2015년)은 극한 상황 속에서 유대교 율법대로 아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여운을 남긴다. 영화를 보며 당나라 우곡(于鵠)이 어린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쓴 시가 떠올랐다.시는 늦게 얻은 아들의 죽음과 장례 정경을 별다…

사랑하는 자식을 자랑하고픈 부모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자식 자랑은 남의 집 아이와 은근히 견주며 시작된다.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도 그렇게 아들 자랑을 시작했다.시인이 어린 아들을 두고 읊은 장편시다. 제목은 옛날 좌사(左思)가 자신의 두 딸을 자…

샐리 포터 감독의 ‘올랜도’(1992년)에선 남성으로 태어난 귀족 올랜도가 어느 날 여성이 되어 400여 년간 늙지 않고 살아가는 내용이 나온다. 유달리 수줍음 많던 조선의 시인 최성대(崔成大·1691∼1762)도 자신이 여성이었다고 노래한 적이 있다.시인이 한양 남산 앞 밭 부근의 …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배경으로 영화음악 ‘라라의 테마’가 잔영처럼 남는 ‘닥터 지바고’(1965년)에서 지바고는 격변의 시대에 라라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도 라라를 잊지 못한다. 조선 후기 김려(金鑢·1766∼1821)도 눈이 많이 내리던 북방의 유배지 부령(富寧)에서 만난 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