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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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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를 뺀 날의 저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20〉](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10/20/121767557.7.jpg)
어린 강아지를 만지듯 잇몸에 손가락을 대본다한 번도 알지 못하는 감각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일들이 일어나서 살 만한 것인가이빨로 물어뜯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말한다이를 잘 숨기고 필요할 때 끈질기게 물어뜯으라고이렇게 부드러운 말 속에피의 비린 맛이 숨어 있다니그러나 그들은 늘 자신…
![편지[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9〉](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10/13/121657149.5.jpg)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그대만큼 나를 정직하게 해준 이가 없었다내 안을 비추는 그대는 제일로 영롱한 거울그대의 깊이를 다 지나가면글썽이는 눈매의 내가 있다나의 시작이다그대에게 매일 편지를 쓴다한 구절…
![백운산 업고 가을 오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8〉](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10/06/121549041.3.jpg)
타는 가을 산, 백운 계곡 가는 여울의 찬 목소리야트막한 중턱에 앉아 소 이루다추분 벗듯 고요한 소에 낙엽 한 장 떠지금, 파르르르 물 어깨 떨린다물속으로 떨어진 하늘 한 귀가붉은 잎을 구름 위로 띄운다마음이 삭아 바람 더는 산 오르지 못한다하루가 너무 높다 맑은 숨 고여저 물, 오래…
![코스모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7〉](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9/22/121321242.3.jpg)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빈 호주머니여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그간의 일들을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김사인(1956∼ )
![적막이 오는 순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6〉](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9/15/121201934.5.jpg)
여름 내내 방충망에 붙어 울던 매미. 어느 날 도막난 소리를 끝으로 조용해 졌다 잘 가거라, 불편했던 동거여 본래 공존이란 없었던 것 매미 그렇게 떠나시고 누가 걸어 놓은 것일까 적멸에 든 서쪽 하늘, 말랑한 구름 한 덩이 떠 있다 ―조승래(1959∼ )여름은 격렬하다. 그것은 …
![하늘 바라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5〉](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9/08/121089252.7.jpg)
청보리밭 청하늘 종다리 울어대면 어머니는 아지랑이로 장독대 닦아놓고 나는 아지랑이로 마당 쓸어놓고 왠지 모를 그리움에 눈언저리 시큰거려 머언 하늘 바라기 했지 ―이준관(1949∼)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다 보면 ‘호모 비아토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행하는 인간…
![여름 가고 가을 오듯[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4〉](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9/01/120977259.5.jpg)
여름 가고 가을 오듯 해가 지고 달이 솟더니, 땀을 뿌리고 오곡을 거두듯이 햇볕 시달림을 당하고 별빛 보석을 줍더니, 아, 사랑이여 귀중한 울음을 바치고 이제는 바꿀 수 없는 노래를 찾는가. ―박재삼(1933∼1997)시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 유명하기 때문에 박재삼은 가…
![연년생[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3〉](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8/25/120870499.3.jpg)
아랫집 아주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갈 때마다 형 지훈이는 어머니, 어머니 하며 울고 동생 지호는 엄마, 엄마 하고 운다 그런데 그날은 형 지훈이가 엄마, 엄마 울었고 지호는 옆에서 형아, 형아 하고 울었다 ―박준(1983∼ )8월 늦장마가 지겹다면 박준의 시집을 추천한다. 5년 전에…
![새들은 저녁에 울음을 삼킨다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2〉](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8/18/120760452.7.jpg)
전깃줄에 쉼표 하나 찍혀 있네 날 저물어 살아 있는 것들이 조용히 깃들 시간 적막을 부르는 저녁 한 귀퉁이 출렁이게 하는 바람 한줄기 속으로 물어 나르던 하루치 선택을 던지고 빈 부리 닦을 줄 아는 작은 새 팽팽하게 이어지는 날들 사이를 파고 들던 피 묻은 발톱들 줄을 차고 날아오르는…
![여름의 칼[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1〉](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8/11/120673258.3.jpg)
화난 강을 지난우리는 툇마루에 앉았다참외를 쥐고 있는 손예전부터 칼이 무서웠지그러나 무서운 건 칼을 쥔 자의 마음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칼은 알아야 한다여름의 창이 빛나고열차는 북쪽으로 움직이고강가에서사람은 말을 잃고 있었다(하략) ―김소형(1984∼ )
![울고 싶은 마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10〉](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8/04/120567516.7.jpg)
그러나 울지 않는 마음 버스가 오면 버스를 타고 버스에 앉아 울지 않는 마음 창밖을 내다보는 마음 흐려진 간판들을 접어 꾹꾹 눌러 담는 마음 마음은 남은 서랍이 없겠다 없겠다 없는 마음 비가 오면 비가 오고 버스는 언제나 알 수 없는 곳에 나를 놓아두는 것 나는 다만 기다리는 …
![교실 창가에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9〉](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7/28/120468247.3.jpg)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교실 창 밖 강 건너 마을 뒷산 밑에 보리들이 어제보다 새파랗습니다 저 보리밭 보며 창가에 앉아 있으니 좋은 아버지와 좋은 스승이 되고 싶다 하시던 형님이 생각납니다 운동장 가에 살구나무 꽃망울은 빨갛고 나는 새로 전근 와 만난 / …
![수척1[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8〉](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7/21/120353464.7.jpg)
슬픔이 인간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유병록(1982∼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비가 와야 싹이 트고, 곡식이 자라고, 열매가 맺힌다고 했다. 물은 그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배웠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이고, 기본 4원소의 첫…
![로맨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7〉](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7/14/120240395.5.jpg)
동료가 어디 심사를 맡게 되었다고 하고 오늘은 후배가 어디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하고 오늘은 친구가 어디 해외에 초청되었다고 하고 오늘은 그 녀석이 저놈이 그딴 새끼가 오늘은 습도가 높구나 불쾌지수가 깊고 푸르고 오늘도 멍청한 바다처럼 출렁이는 뱃살 위의 욕심에 멀미한다 나는 / 나를 …
![여간 고맙지 않아[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6〉](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23/07/07/120132560.9.jpg)
어제의 괴로움 짓눌러주는 오늘의 괴로움이 고마워 채 물 마르지 않은 수저를 또 들어올린다 밥 많이 먹으며 오늘의 괴로움도 대충 짓눌러버릴 수 있으니 배고픔이 여간 고맙지 않아 내일의 괴로움이 못다 쓸려 내려간 오늘치 져다 나를 것이니 내일이 어서 왔으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