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규]黨名대로 이루소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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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
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
 새누리당을 뛰쳐나온 국회의원 29명이 신당 이름을 확정했다. ‘바른정당’이다. ‘정의로운 나라(正), 깨끗한 사회(淨), 따뜻한 공동체(情) 추구’라는 가치도 밝혔다. 스스로 밝힌 가치를 오래도록 꾸준히 실천해 가길 기원한다. ‘이번에도 선거용 일회용 정당이 될 것’이라는 핀잔이 많기 때문에 더 간절히 빌어 본다.

 선거 때만 되면 신당이 생기고, 기존 정당이 합쳐지는 이합집산이 너무 많았다. 또 선거가 끝나면 쪼개지거나 사라지는 정당도 무수히 많다. 바른정당을 신호탄으로 그 고리가 끊기길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비운의 정당사가 되풀이될 조짐이다. 바른정당이 떨어져 나간 뒤에도 새누리당은 인적 청산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99명의 국회의원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정계개편까지 눈치를 보며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모양새다. 조만간 당 안팎에서 박근혜 대통령 흔적 지우기 요구가 빗발친다면 명맥 유지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국정 농단 사태의 중심에 서 있는 박 대통령을 보위하기엔 아무리 친박계라지만 역부족일 것이다.

 우리나라 정당 이름의 변천사는 정계개편, 그것도 대선을 앞둔 시점과 궤를 같이한다. 진보든 보수든 내세운 가치보다 집권에만 관심을 뒀기 때문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11명의 대통령 가운데 같은 당 이름을 공유했던 대통령이 단 2명뿐이었다는 사실도 이를 방증한다. 민주자유당(민자당) 소속으로 당선된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자신들이 만든 당에서 쫓겨나듯 탈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두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민자당의 생명은 5년 11개월로 마감했다. 두 대통령이 탈당할 때마다 신한국당과 한나라당으로 바뀌었다. 한나라당은 15년 동안 명맥을 유지했지만, 2012년 2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바뀌었다. 당시 간판 변경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주도했다. 박 대통령의 정치 운명에 따라 새누리당 간판도 명운을 함께할 가능성이 높다.

 야권도 별반 다르지 않다. 김대중 정부 이후만으로도 새정치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까지 간판을 갈아 치워 왔다. 신익희 선생이 창당한 민주당의 법통을 잇는다며 ‘민주’를 상수로, ‘새’나 ‘신(新)’, ‘통합’을 변수로 조합해 온 셈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심정이었겠지만, 당 간판 교체는 과거 폐습과의 결별보다는 새 집권을 위한 신분 세탁에 불과했다. 전국적인 조직과 막대한 당 재산, 정부 지원금을 유지한 채 이미지를 탈색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조치가 당 간판 교체였던 것이다.

 이런 우리 정당사에 또 한 가지 변수도 등장했다. 초읽기에 들어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 역시 정계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을 대선 주자로 영입하든, 견제하기 위해서든 일단은 손을 잡고 보자는 기존 정치권의 러브콜도 이미 쇄도하고 있다. 또 다른 이름의 새 정당 간판이 내걸릴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정계개편 속에 신당이 나오더라도 차별화된 당명을 작명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나온다.

 그동안 수많은 가치와 좋은 의미를 당명에 담았던 정당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이야기다. 현존하는 정당들이 이미 좋은 가치를 당명으로 표방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국민(의당)과 더불어 민주(당)와 정의(당)를 실천하는 바른 정당.’ 정치권은 집권을 위한 헤쳐 모여에 앞서 ‘가장 이상적인 당명을 어떻게 현실 정치에 담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홍성규 채널A 정치부 차장 hot@donga.com
#새누리당#대통령#바른정당#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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