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안보위기 키운 靑·여당, ‘문재인 종북논란’에 안도할 때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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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물어보고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했다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어제 “사실이라면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충격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이를 ‘북한정권 결재사건’으로 규정하고 ‘대북 결재사건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내년 대통령선거까지 안보 이슈로 이어갈 태세다. 오늘도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총공세를 펴기로 했다.

 회고록 내용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제 처음 “제가 초기에는 결의안에 찬성해야 한다는 외교부 주장에 동조하다가 나중에 다수 의견에 따라 입장을 바꿨다고 하는데, 그것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측근인 김경수 더민주당 의원이 ‘북한 의견을 물은 것이 아니라 결정을 통보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맞는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엔 아예 묵묵부답이었다. 남들은 잘도 기억하는데 명색이 대통령비서실장이라던 사람이 북한인권결의안 같은 중요 사안의 의사결정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9년 전 일이니 실제로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곤궁해질 때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를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써먹기도 한다. 송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을 시인하면 새누리당의 ‘대북 결재’ 주장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부인했다가 나중에 사실이 드러나면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 등으로 수세에 몰렸던 여권이 국면 전환 카드라도 잡은 듯 문 전 대표와 더민주당을 몰아붙이는 데 박수 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대한민국이 북의 ‘핵 인질’로 잡히는 안보 위기에 본격적으로 빠진 것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전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감행했음에도 한가하게 ‘통일 대박’을 외쳤고, 대북 제재를 무력화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함께 톈안먼 성루에 올랐다가 4, 5차 핵실험을 맞았다. 어제 예정됐던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대북 대비 태세를 다잡았어야 할 텐데 돌연 연기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안보 위기에 더해 경제 위기는 서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유일호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수뇌부를 따로 불러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회의를 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국회의 국정감사도 ‘회고록 파문’으로 새로운 여야 대치 정국에 접어들면서 소득 없이 끝날 것이다. 애초에 우병우 최순실 차은택 등 주요 증인 채택을 막아 사실상 국감을 무력화한 것은 청와대와 ‘청와대 하부기관’ 소리를 듣는 새누리당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노무현 정부 때의 ‘대북 결재’ 의혹을 공격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노무현 정부#유엔 북한인권결의안#문재인#회고록#문재인 종북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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