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북한의 핵개발 버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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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은 1945년 7월 24일 이오시프 스탈린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특별한 파괴력을 지닌 신무기’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다루기 위해 미국 영국 소련 지도자가 모인 포츠담 회담에서였다. ‘신무기’는 원자폭탄이었다. 포츠담에 도착한 다음 날인 7월 16일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한 트루먼은 이로써 소련을 외교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트루먼이 원자폭탄이라고 밝히는 대신 심드렁한 표정으로 ‘신무기’라고 했던 부분이다. 국가의 최첨단 무기나 전략무기의 존재는 공개하지 않고, 언급하더라도 모호하게 밝히는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적국이 알아차리고 기술을 빼내거나 같은 종류의 무기를 만드는 것을 막고,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스탈린이 첩보원을 통해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을 알고 있었고, 그날 저녁 모스크바에 전문을 보내 원자폭탄 개발을 독려했다지만 이는 별개의 문제다.

이스라엘도 핵무기 존재에 대해선 ‘NCND(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음)’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의 미국과 소련도 모호성을 유지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임기 말인 1960년에 미국은 핵전쟁 수행 계획인 단일통합작전계획을 처음으로 작성했다. 소련과 중국, 위성국가들에 약 3500개의 전략 핵무기를 발사하는 것이었다. 이의 변형된 형태가 미사일 수를 제한하면서 발전시킨 ‘상호확증파괴(MAD)’ 전략 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들도 취임한 뒤에야 이런 파괴적인 계획의 실체를 알고 충격받을 정도로 기밀 유지는 철저했다.

소련은 1985년부터 ‘데드 핸드(Dead Hand)’로 알려진 보복 공격 시스템을 실전 배치했다. 미국의 핵 공격 이후 지도자와 지휘체계가 무너져도 컴퓨터가 보복 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리도록 고안한 시스템이었다. 소련이 해체되고 한참 지난 뒤에야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

북한의 최근 행보는 이런 국제정치적인 상식이나 전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보인다. 북한은 3일 핵탄두 실전 배치를 주장하고 9일에 핵탄두 소형화를 언급한 데 이어 15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대기권 재진입체(RV) 모의실험까지 공개했다. ICBM 개발 과정을 생중계하듯 과시하는 모습이다. 특이점은 더 있다. 핵무기가 국제정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쓰지 않기 위한(non-use) 무기’라는 점에서다. 그래서 억지력의 무기이지만 북한은 선제공격용이라며 ‘사용하기 위한 무기’라고 위협하고 있다. 빨리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협상을 통해 실속을 차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오히려 국제사회가 북한을 더 믿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동참하면서 북한의 다급함이 노출된 셈이다.

정작 한국 국민을 위협하려던 북한의 심리전은 알파고의 열풍을 넘지 못하고 묻혔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오고 있지만 홀로 파괴적인 방향의 핵무기 개발에만 매몰된 북한을 외면한 것이다. 북한 지도부에도 알파고의 전법을 배워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지도부의 생존만을 위한 것이라면 알파고라 해도 핵개발 지속이라는 버그 형태의 ‘악수(惡手)’를 이어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북한 주민 전체의 삶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세팅을 바꾼다면, 아마도 알파고는 곧바로 이런 사인을 내지 않을까.

‘NK Nuke resigns(북한 핵무기 포기)’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
#트루먼#ncnd#북한#핵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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