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초청에 화답… ‘이벤트’엔 박수 안쳐 美에도 성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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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中전승절 참석-열병식 불참]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경기 과천시 중앙공무원연수원에서 열린 ‘2015 국정과제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과천=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경기 과천시 중앙공무원연수원에서 열린 ‘2015 국정과제 세미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과천=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다음 달 3일 중국 전승절에 맞춰 방중하기로 한 것은 의외의 결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중국으로 지나치게 기울었다’는 인식을 지우기 위해 애써 온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미국 싱크탱크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중국에 경도됐다는 건 오해”라는 내용의 연설문을 별도로 준비할 정도로 중국에 치우쳤다는 시각을 의식해왔다. 그러나 이번에 ‘전승절 행사 참석, 열병식 불참’이라는 절충점을 통해 최대 우방(미국)과 최대 교역국(중국)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한 셈이다. 일본이 중국과 해빙무드로 가는 상황에서 한국만 외교적 고립에 머물 수 없다는 전략적 판단도 이번 결정에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 중국이 야심차게 준비한 열병식

올해 중국 열병식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야심작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처음으로 9월 3일을 ‘중국인민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로 지정하는 새 법을 만들었다. 건국기념일(10월 1일)이 아닌 전승절에 맞춰 열병식이 이뤄지는 것도 처음이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이후 열병식은 10주년 단위의 건국기념일에 맞춰 열렸다.

이 관행대로라면 건국 70주년인 2019년 10월에 열병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 주석은 취임 3년 만인 올해 열병식을 갖기로 했다. 그만큼 정권을 장악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항일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70주년이라는 올해를 특별히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각국 지도자와 군대까지 초청한 것이다. 여기에 박 대통령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 주요국 정상이 모두 초청 대상이었지만 지금까지 참석을 공식화한 건 러시아와 몽골 두 나라뿐이다.

○ 러시아 전승절 사례 참조

초청장을 받은 한국의 고민은 깊어졌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핵심 당사국이다. 다른 나라처럼 중국의 초청을 팽개치듯 외면할 수가 없다. 결국 박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열병식과 전승절 행사를 분리하는 대안을 마련한 것이다.

5월 9일 러시아 전승절 행사의 교훈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행사에 초청받은 박 대통령은 윤상현 대통령정무특보를 특사 자격으로 대신 참석시켰다. 러시아는 “윤 특사의 격(格)이 너무 낮다”며 한때 접수 거부를 검토할 만큼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윤 특사는 대통령 친서를 갖고 갔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만나지도 못했다. 결국 대통령 친서를 푸틴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에게 맡기고 오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한-러는 한동안 서먹한 관계가 됐다. 중국에서는 되풀이해선 안 될 일이었다. 당장 정치적, 경제적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승절 부분 참석’이라는 결정이 나온 이유 중 하나다.

○ 미국, 막판까지 “재고해 달라” 타진

미국은 “한국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막판까지 물밑에서 결정을 번복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달 16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직접 한국 정부에 전승절 참석 결정을 바꿀 수 있는지 타진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미 중국에 통보한 상태여서 번복이 어렵다”고 답했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블링컨 부장관은 취임 후 첫 해외 출장지로 올해 2월 한국을 택할 만큼 동북아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그만큼 한국으로선 부담을 안고 중국행을 결심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 결정에도 불구하고 한미는 10월 16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흡족하진 않지만 서로 상대방 처지에 대해 양해가 된 것이다. 북한의 당 창건기념일(10월 10일)을 전후한 도발 가능성 때문에 한미 공조가 중요하다는 공동 인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 전승절 참석을 계기로 형성된 한중 관계를 활용해 하반기 외교 주도권을 발휘해야 하는 숙제도 안게 됐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 의장국을 맡고 있는 한국이 어떤 역할을 소화하느냐에 따라 3국 정상을 서울로 불러 모을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9월 방중과 중일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일본은 가급적 한국을 배제하고 중국과의 직거래를 고집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 당국자는 “연말까지 어떻게든 한중일 정상회의의 서울 개최를 성사시키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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