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총장, 박근혜-김정은 대화 여는 징검다리 놓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3월 방북 추진… 朴메시지 들고 가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한반도 평화 증진을 위해 필요한 모든 역할을 할 준비가 됐다.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반도 상황이 안정되고 통일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열망은 누구보다 크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10월 한국 국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하며 방북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 반 총장의 3월 방북 추진 가능성이 고조된 것은 그의 오랜 바람을 실현할 수 있는 첫걸음이다. 그 방북 시점이 한국의 새 정부 출범 직후인 만큼 그의 행보는 박근혜 정부와 북한 김정은 지도부 간의 관계 설정에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 외교가에서는 “유엔의 수장인 반 총장이 박근혜 정부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것이 형식상 맞지 않지만 내용적으로는 박 당선인의 대북특사 기능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 반 총장의 방북 의지 강해

반 총장의 1차적 방북 목적은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U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정치적 색깔이 옅은 스포츠 분야의 교류를 통해 꽉 막힌 남북 관계를 풀 계기를 마련해보자는 뜻도 담겨 있다. 반 총장은 광주시 측에도 “유엔 차원에서 반드시 남북 단일팀 구성을 하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 관계자도 “반 총장이 방북을 재임 기간에 이뤄내야 할 주요 목표로 삼고 상당히 정성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스포츠개발평화사무국(UNOSDP)이 U대회조직위원회와 공동프로젝트 협약을 체결하고 활동 중인 점, 윌프리드 렘케 유엔 사무총장 스포츠특별보좌관이 이달 방북할 것으로 알려진 것 등은 반 총장의 강한 의지가 담긴 움직임들이다.

반 총장의 3월 방북이 성사되면 유엔 수장의 지위와 역할을 감안할 때 그가 북한에서 논의하게 될 이슈는 남북 단일팀 성사 여부를 넘어선 광범위한 한반도 평화 증진 방안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유아 계층을 대상으로 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 다양한 경제 및 사회 문화 분야의 교류 등이 포괄적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박 당선인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비롯한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한 북한의 평가와 반응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박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보다 전향적인 대북정책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를 추진할 결정적 모멘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가 새 정부의 1차 과제다. 반 총장의 방북이 그 발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분쟁지역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 유엔 사무총장이 한반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며 “반 총장의 방북이 성사되면 남북 간 대화 무드를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방북 성사 위한 난관도 적지 않아

북한이 최근 박 당선인을 향해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는 것도 반 총장의 방북 추진과 맞물려 주의 깊게 살펴볼 대목이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1일 공개한 육성 신년사에서 “남북 대결을 해소해야 한다”고만 했을 뿐 대남 비방을 전혀 하지 않았다. 북한은 박 당선인의 실명을 거론하며 쏟아내던 비방도 지난해 12월 초부터 중단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 관계 변화를 기대한다는 의지가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 당선인은 2002년 방북해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했던 당사자이다. 미국에서 대북 유화파로 대화를 강조해온 존 케리 상원의원이 최근 국무장관으로 지명됐다는 점도 남북 관계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대외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한반도 정세의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반 총장의 방북 성사 가능성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는 “아직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논의도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반 총장 방북이 전격적으로 성사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당선인 측도 반 총장의 방북 추진과 관련해 반 총장 측과 별도 협의를 진행한 것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박 당선인 외교안보라인의 한 핵심 인사는 “반 총장의 방북 추진에 우리(박 당선인 측)가 적극 관여하면 유엔 수장의 독자적 활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유엔의 한 핵심 관계자도 “반 총장이 방북했을 때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서야 대북 접촉을 본격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조숭호 기자 light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