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8> 국방부 장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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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안보상황 헤쳐갈 전략-위기대응 결단력 갖춰야

“많은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고 존경과 여론의 찬양을 받는 인물. 외부 압력과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고 정치적 야망이 없는 전략가….”

미국의 대표적 석학인 새뮤얼 헌팅턴 전 하버드대 교수가 저서인 ‘군인과 정부(The Soldier and The State)’에서 제시한 국방부 장관의 자질과 역량이다.

건군 이래 이런 기준을 충족한 국방부 장관은 몇 명이나 될까. 이 질문에 많은 군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손에 꼽기 힘들다”고 답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일부 장관은 ‘정치적 줄타기’를 하거나 무능, 무소신으로 군과 안보태세에 금이 가게 했다”고 지적했다. 차기 정부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방수장’을 기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현직 군 수뇌부와 전문가들은 현재와 미래 안보 상황에 대한 통찰력과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결단력을 갖추고, 사심 없이 군 통수권자를 보좌할 수 있는 인물을 국방부 장관의 적임자로 제안했다.

① 안보 위기 헤쳐 나갈 결단력 갖춘 인물

국방부 장관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고, 도발 시 단호한 응징을 주저하지 않는 결단력이 꼽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연평도 포격 도발 때 장관 등 군 수뇌부는 안이하고 무른 대처로 ‘안보 무능’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휴전 이후 처음으로 연평도가 포격당한 준(準)전시 국면에서 허둥대는 군과 국방부 장관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불안과 실망감을 안겨줬고, 결국 당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대응 실패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6명의 장병이 전사한 제2차 연평해전도 군 수뇌부의 방심과 허술한 대처가 초래한 ‘자충수’였다. 익명을 요구한 전 국방부 장관은 “햇볕정책에 경도돼 ‘설마’ 하며 해군의 손발을 묶어버린 ‘엉성한 교전규칙’을 만든 장관 등 군 수뇌부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당시 한철용 북한감청부대장(육군 소장)은 “몇 차례나 북의 도발 징후 첩보를 보고했지만 장관이 이를 묵살하고 책임을 부하에 떠넘겼다”고 주장해 큰 파장이 일었다.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결국 김동신 장관은 얼마 뒤 경질됐다.

국방부 장관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안보 리더십’을 발휘해 장관이 소신껏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합참의장을 지낸 한 인사는 “군 대비태세의 성패는 군 통수권자의 안보의식과 이를 국방정책으로 구현하는 국방부 장관의 결단력에 좌우된다”며 “어느 하나라도 삐걱대면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할 개연성이 높다”고 말했다.

② ‘국방 백년대계’를 고심하는 ‘정책전략가’

한반도 주변의 안보정세를 꿰뚫어 보면서 국가 존립과 국익을 뒷받침할 국방정책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전략가를 주요 자질로 꼽는 전문가도 많다.

G2(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격화, 그 틈에서 재무장을 목표로 ‘보통국가’를 추구하는 일본, 주변국 간 첨예한 영토분쟁 등 새 정부가 직면할,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은 과거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과 위기감이 높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5년이 대한민국의 안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북의 도발 등 현존 위협뿐 아니라 미래 안보 위협을 내다보는 혜안과 전략적 식견을 갖춘 국방부 장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정 군의 논리에 매몰돼 예산과 조직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은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해군 참모총장을 지낸 한 인사는 “과거 육군 출신의 일부 장관들은 ‘육군 중심주의’에 빠져 국방개혁과 전력 증강을 과도하게 육군 위주로 추진했다”며 “이는 군을 기형적 구조로 만들고, 혈세 낭비를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표심’을 노린 ‘안보 포퓰리즘’의 위험성을 군 통수권자에게 직언할 수 있는 용기도 국방부 장관의 자질로 꼽혔다. 군 고위 관계자는 “이번 대선에서 여야 후보 모두 군복무 기간 단축을 공약했지만 예산과 안보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실현되기 힘들다”며 “차기 국방부 장관은 이런 현실을 군 통수권자에게 제대로 알려 안보 공백이 초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③ 군 안팎의 존경과 신망은 필수

군 통수권자를 보좌하며 군을 지휘 통솔하는 국방부 장관에겐 다른 고위 공직자보다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된다. ‘국방수장’에 대한 군 안팎의 존경과 신망에 금이 가면 군의 기강과 안보 태세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 비리나 구설수에 연루된 국방부 장관도 적지 않다. 1996년 10월 이양호 장관은 경전투헬기사업과 관련해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옷을 벗었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국방사업인 ‘백두사업’ 추진 과정에서 재미 로비스트인 린다 김(본명 김귀옥) 씨와 ‘애정 어린 편지’를 주고받고,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밝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앞서 노태우 정부 때도 율곡사업 등 대규모 무기 도입 사업 추진 과정에서 무기 중개상으로부터 ‘검은돈’을 받은 혐의로 국방부 장관들이 잇달아 구속되기도 했다.

또 김대중 정부에서 국방수장을 지낸 천용택 장관과 김동신 장관은 각각 군납 비리와 진급 비리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파장이 일었다.

④ ‘정치 좇는 해바라기’는 금물

정치 지향적 인물은 반드시 배제돼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합참의장을 지낸 한 인사는 “실명을 밝힐 순 없지만 일부 국방부 장관들은 직위를 다음 자리의 ‘디딤돌’로 이용해 ‘군의 정치 시녀화’ 현상을 초래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실제로 군 수뇌부 인사 때마다 정치권에서 ‘지역 안배’를 거론하거나 특정 인사의 진급을 부탁하는 관행은 ‘정치군인’을 양산하고, 국방부 장관이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도록 만드는 주범으로 꼽힌다. 2008년 11월 당시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가 국회에 상주하는 국방부 연락단장(대령)의 진급을 부탁하자 이를 거절했고, 결국 사상 처음으로 국방부 연락단이 국회를 철수하는 등 충돌을 빚기도 했다.

국방부 장관이 정치를 좇게 되면 나머지 군 수뇌부와 일선 군 지휘관들까지 위기 시에도 ‘정치적 계산’을 하게 되고 결국 안보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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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박근혜#국방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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