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학생 부릅뜬 눈 무서워… 수업 꼭꼭 챙기는 폴리페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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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밤이면 텅 빈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민주통합당사에서 회의가 열린다. 문재인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미래캠프 산하의 ‘새로운 정치위원회’ 정규 회의다.

이 위원회에 있는 17명의 위원 가운데 11명이 현직 교수다. 각자 학교에서 수업을 맡고 있어 평일에는 서로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수업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이들은 위원회 활동을 시작한 지난달 아예 학교 수업이 없는 토요일 오후 7시로 회의 시간을 정했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는 “이번 대선에서는 교수들이 캠프에 참여해도 절대 수업을 등한시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다”며 “이젠 학생들도 정치 참여를 핑계로 휴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교수 스스로 수업을 철저히 챙기는 편”이라고 말했다.

선거철이면 학교에 등을 돌리고 정치권에 몸담는 ‘폴리페서(polifessor·politics+professor·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교수)’ 사이에서 과거와 달리 ‘수업만은 챙기자’는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학생과 학교 당국이 감시의 눈을 부릅뜬 결과다. 학생과 학교 측은 “더이상 폴리페서들이 수업을 팽개치는 일을 좌시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고 있다.

실제로 4월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는 한 교수에게 “교수가 정치 활동을 이유로 학사 일정을 자의적으로 단축해 수업권을 침해했다”며 해명을 요구하는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폴리페서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경희대에서도 학생 100여 명이 ‘폴리페서 사퇴 촉구’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대학 측에 폴리페서 방지를 위한 규정을 만들어 달라는 제안서도 전달하는 등 폴리페서 단속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월 총선에는 교수 47명이 출마했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대학에서는 각 후보 캠프별로 100∼200명씩 직·간접적으로 몸담고 있는 폴리페서의 활동 감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다. 대학생 김모 씨(25·여)는 “집회 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생들 사이에는 휴강을 일삼으면 강의 평가를 나쁘게 하는 방법으로라도 폴리페서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자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했다. 대학 측도 비난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수업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각 대선후보 캠프에 참여한 교수들은 자세를 낮추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는 최외출 영남대 교수는 안식년 휴가를 냈다.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하는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대학원을 포함해 1주일에 총 3차례 수업하고 있지만 정치 활동을 이유로 휴강한 적은 없다. 안철수 후보 부인인 김미경 서울대 의대 교수는 대선레이스가 본격화된 지난달부터 세 차례에 걸쳐 학교 측의 공식 허가를 받고, 대체 강사를 마련한 뒤 선거 운동을 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교수의 정치 활동이 정당법 규제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 교육 활동에 지장이 생긴다면 학생들의 피해로 이어져 학교에서도 용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 속에서도 일부 교수들은 여전히 다른 교수들에게 수업을 맡기거나 제대로 된 공지 없이 강의 일정을 바꿔 학생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각 대선후보 캠프에서 핵심역할을 맡아 시선이 집중되는 교수들과 달리 비공식 자문역이거나 직함만 있고 실제 역할이 없는 교수들에 대한 감시의 시선이 무뎌서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외활동이 많다 보면 간신히 수업은 하더라도 연구 활동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어 폴리페서의 ‘직무유기’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승헌·김태웅 기자 hparks@donga.com
#민주통합당#폴리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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