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성 김 주한 美대사 눈물의 선서식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아버지가 이 자리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성 김 주한 미국대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이 메던 그는 끝내 울먹이고 말았다. 연설은 세 차례나 중단됐다. 리셉션장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200여 명의 참석자는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어색하던 분위기가 감동의 마당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3일 오후 4시 미 국무부 청사 8층에 있는 외교접견실인 벤저민프랭클린룸. 10일 부임을 앞둔 김 대사의 공식 선서식이 열렸다. 국무부가 초청한 200여 명의 인사만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선서식에서 김 대사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김 대사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사상 첫 주한 미대사로 임명되기까지의 ‘아메리칸드림’과 순탄하지 못했던 가족사를 언급하는 대목에선 그의 어머니와 부인, 두 딸 등 가족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당초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선서식을 주재할 예정이었지만 모친이 별세하는 바람에 그 대신 웬디 셔먼 정무차관이 나섰다.

처음엔 김 대사를 칭찬하는 덕담이 오가면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는 김 대사가 과거 수차례 평양을 방문했던 일화와 함께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유머러스하게 소개하며 좌중을 웃겼다.

이어 연단에 선 김 대사는 자신이 중학교 1학년 때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 온 부친을 거론하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 자리에 계셨으면 무척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라며 중간 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부친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때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공사를 지낸 김재권 씨. 정보기관 출신인 김 공사는 DJ 납치 사건에 연루돼 이후 공직에서 물러나 도미해야 했다.

이민 초기 정착도 쉽지 않던 어려운 시절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겹치면서 파노라마처럼 그의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김 대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일궈냈던 성취와 소회를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그는 “이 자리에 한국계 미국인이 많이 와 계신데 여러분의 성장이 오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했다”고 말했다.

셔먼 차관은 “김 대사는 미묘한 외교 현안을 다루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외교관”이라고 칭찬했다.

김 대사는 당초 늦어도 8월 중에는 한국에 부임할 예정이었지만 상원에서 인준이 늦어지면서 두 딸과 부인은 미국에 두고 ‘나 홀로’ 한국에 가게 됐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학기 중이어서 당분간 ‘기러기 대사’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