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사청문회를 청문하다]20명중 11명 “靑 검증잣대 느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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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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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와 권재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4일과 8일 각각 열린다.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국회는 여야 공방의 장으로 변질된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사진은 지난해 8월 24일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현 국회의원)가 인사청문회에 앞서 선서를 하는 모습. 동아일보DB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와 권재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4일과 8일 각각 열린다.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국회는 여야 공방의 장으로 변질된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사진은 지난해 8월 24일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현 국회의원)가 인사청문회에 앞서 선서를 하는 모습. 동아일보DB
《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면 어김없이 두 목소리가 충돌한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여당과 “국민을 무시한 인사”라는 야당. 국민은 헷갈린다. 인사청문회를 거치면 후보자가 해당 직위에 적합한지 판단이 서기는커녕 오히려 실체가 불분명한 의혹과 정치적 공세로 시야가 흐릿해진다. 이 때문에 인사청문회가 막을 내리면 ‘청문회 무용론’이 뒤따른다. 》
○ 무기력한 검증, 볼썽사나운 청문회

동아일보가 2일 정치·행정 분야 전문가 20명에게 물어본 결과 청문회 파행의 근본 책임에 대해 11명은 “대통령과 여당의 일방통행과 야당의 정치 공세의 합작품”이라며 ‘양비론’을 폈다. 6명은 파행 책임이 대통령에게, 3명은 야당에 더 많다고 답했다. 결국 17명은 정국 주도권을 쥔 여권에 책임을 물은 셈이다.

육동일 충남대 교수는 “권재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과정은 정치의 실종이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의 중심에 서서 야당을 설득해야 했지만 그런 노력이 부족했다는 의미다.

청와대는 후보자에 대한 사전검증을 강화했다며 “야당이 딴죽을 걸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달랐다. 11명은 ‘청와대의 기준이 너무 느슨해’ 후보자에 대한 사전검증에 허점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5명은 ‘후보자의 답변이 정직하지 않아서’, 3명은 ‘모의청문회 등 제도 도입 초기의 시행착오’를 검증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는 “후보자 개인이 직접 작성한 자가검증서를 근거로 모의 청문회를 여는 것은 사전검증이라기보다는 실제 청문회에 대비한 ‘방탄검증’”이라고 비판했다. 또 “자가검증서의 상당수 문항은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건성 질문’”(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이라거나 “자가검증서는 후보자의 변론 위주로 구성돼 실효성이 없다”(이종수 연세대 교수)는 지적도 이어졌다.

청문회 후보자에 대한 검증 못지않게 국회 청문위원들의 자질도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진 경희대 겸임교수는 “선진국은 후보자뿐 아니라 청문위원의 자질도 엄격히 평가한다”며 “청문위원 자질 평가가 청문회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출 국회입법조사처 정치의회팀장은 “청와대의 검증자료를 국회와 공유할 때 국회의 검증이 도덕성 측면에만 매몰되지 않고 정책능력과 리더십 검증으로 옮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청와대에 종속돼 행정부 견제 기능을 포기한 여당 의원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낙마 기준, 사회적 합의 필요”

민주당이 후보자의 낙마 기준으로 제시한 △병역면제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등 이른바 ‘4대 필수 불법과목’과 관련해 전문가 12명은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답했다. 8명은 민주당의 주장에 동조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위장전입은 2002년 전후를 구분해 봐야 한다”며 “2002년 이후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2002년은 장상,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가 줄줄이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해다. 위장전입 문제가 고위 공직자의 낙마 기준으로 부상한 2002년 이후 위장전입 사례가 있다면 고위 공직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4대 과목’에서 자유로운 인사가 별로 없다는 현실론은 민주당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혔다. 최진 겸임교수는 “현재 장관급 엘리트 치고 4대 과목에서 깨끗한 사람은 여야를 포함해 매우 드물다”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도 “공직에 맞는지를 평가하는 데 기계적인 평가만 있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하는 만큼 폭넓은 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중 잣대’에 대해서는 전문가 대부분이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정치인 출신 후보자에 대해서는 ‘전관예우’를 인정하듯 부드럽게 하고, 그렇지 않은 인사에 대해서는 범죄자 심문하듯 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육동일 교수는 “정당에 따라, 사안에 따라, 후보자에 따라 기준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후보자 가족의 사생활 등 일부 내용은 비공개로 청문회를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16명은 필요성에 공감했다. 4명은 고위 공직자 후보자는 공인인 만큼 모든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편 권 전 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에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섰다. 11명은 “장관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민정수석을 장관에 지명할 수 있다”며 찬성을, 9명은 “전례가 드문 부적절한 인사”라며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김민정 인턴기자 이화여대 행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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