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비리 대대적 감찰, 얼어붙은 관가]기업서 공무원 상대 ‘對官 업무’ 담당자들의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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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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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퇴짜 놓을라… 호텔방 앞에서 2시간 대기도”

공무원 부정부패는 기업 접대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민원인이나 피감기관 등이 접대를 하는 때도 있지만 결국 이권(利權)과 직결된 곳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공무원을 상대하는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들이 증언하는 공무원의 부정부패 유형은 말 그대로 백태(百態)다. 돈이나 향응을 요구하거나, 혹은 마지못해 받는 것은 고전적인 방법이다. 공적인 출장이나 관공서의 내부 행사에 기업을 동원해 각종 편의를 제공받는 일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접대를 하는 경쟁 업체들끼리 아예 부담 비율을 정해 ‘접대비’를 조성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 “접대를 하도 많이 했더니 룸살롱에서 내게 접대하더라”


접대 유형 중 가장 흔한 것은 향응. 관공서 주변에서는 감찰을 의식해 점심 한 끼에도 몸을 사리지만 유흥가로 넘어가면 아예 공무원이 지정하는 고급 음식점과 룸살롱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건설 관련 업종의 한 대기업 인사는 “사흘 걸러 한 번은 접대 자리에 가게 된다. 중앙부처, 산하 기관, 지방자치단체, 심사 기관 등 ‘관리’ 대상이 많다. 공무원 직급이 좀 낮으면 부장이나 과장이 나가고, 서기관 이상 되면 전무나 상무가 나간다”고 말했다.

한 중견기업의 직원은 “상무 이상 임원진이 직접 접대하면 사원 너덧 명이 따라붙는다. 2차 접대에 나갈 아가씨를 차에 태우고 식당 앞에서 대기하다가 호텔에 데려다주는 일도 있다”며 “가끔 아가씨가 마음에 안 든다며 바꿔 달라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호텔방 앞에서 한두 시간 정도는 귀를 대고 분위기를 살피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일명 ‘술 상무’ 역할을 한다는 기업 관계자는 “비밀 유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마다 특정 식당이나 유흥업소를 잡아놓고 몇 달씩 고정적으로 이용하는 편이다. 한 달에 매상을 수천만 원씩 올려주니까 강남 유흥가에서 ‘우리 집을 이용해 달라’며 나한테 접대를 할 정도다”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우리 업계에 취향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심사 담당 공무원이 있다. 선물을 어설프게 주면 불이익을 준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직원들을 시켜 그 공무원의 부인을 일주일 넘게 미행하기도 했다. 부인이 자주 가는 명품 매장을 알아내서 그 브랜드의 수백만 원짜리 물품 교환권을 줬더니 일이 잘 풀렸다”고 말했다.

○ 부정부패라고 생각지도 않는 관행들


공무원 중에는 기업을 상대로 소속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업체의 티켓, 숙박권, 여행권 등은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계열사에서 관련 사업을 한다고 해도 사실은 다 비용인데 공짜라고 생각하고 요구하는 것 같다”면서 “말이야 ‘부담 없이 알아봐 달라’고 하지만 사실상 강요 아니냐. 산하 기관에서 ‘상급 부처에서 구해달라고 하더라’면서 상품권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정말 문제다”라고 말했다. 프로야구 구단을 소유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포스트시즌이 되면 티켓을 꼬박꼬박 챙겨놔야 하고, 경기 당일에 달라는 공무원도 많아서 퀵서비스까지 섭외해 둬야 한다. 나중에 좋은 자리 안 줬다고 욕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사업장을 여럿 둔 한 중소기업 오너는 사업장 하나를 늘리기 위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말단 공무원에게 1년 넘게 공을 들였다. “신청이 많이 밀렸다”, “민원이 제기됐다”며 차일피일 일처리를 미루던 공무원은 여름휴가 성수기에 “다음 주에 처가 식구들과 휴가를 가는데 당신이 투자한 리조트의 딜럭스룸 3개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부랴부랴 직원들이 예약한 방을 빼앗아 상납하자 일이 겨우 진척됐다. 이후 1년간 그 공무원 양가 부모의 생일, 자녀의 졸업식, 명절마다 숙박권을 보냈다고 한다.

명절이 되거나 업무 담당자가 바뀌면 노골적으로 인사를 요구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한 대형마트 점포 책임자는 “우리 인사팀의 대관 담당자가 바뀌자 관할 관공서의 한 공무원이 수시로 점검을 나와서 이런저런 트집을 잡더니 상품권 수십만 원어치를 주자 조용히 돌아갔다. 이 공무원은 평소에도 카트에 물건을 가득 담아놓고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결제를 하게 만드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 경쟁 업체끼리 ‘갹출’해 용돈 만들기도


공무원끼리 국내외 출장을 갈 때 관련 업체들을 동원해 현지 숙박비, 식사비, 골프비, 유흥비 등을 받는 것도 흔한 일이다. 특히 해외 출장에서는 감사 등에 걸릴 위험이 더 적기 때문에 현지에서 ‘용돈’을 요구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공무원이 출장을 가려는 나라에 진출한 계열사가 있는 기업들끼리 일종의 ‘컨소시엄’을 꾸려서 공동 접대에 나선다. 현지에서 현금을 갹출하려면 곤란하니까 신용카드를 쓴 뒤에 한국에 돌아와 접대비를 정산해 갹출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공공기관의 국내 출장에 따라갔다는 중견기업 직원은 “공공연하게 ‘하루에 1인당 20만 원’이라는 식으로 용돈을 정한 뒤 출발한다. 당연히 더 얹어 준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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