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한국病이다]<2>‘싸움꾼’의 지역구 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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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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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질해서 동네 보탬됐소? 다음 선거까지 꼭 기억할거요”

①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원 안)이 2010년 12월 8일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 최재성 의원과 복싱을 방불케 하는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② 민주당 강기정 의원(원 안)이 2009년 7월 22일 국회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의사진행에 항의하며 의석 위로 뛰어오르고 있다. ③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원 안)이 2009년 1월 5일 여당의 법안 강행 처리에 항의하며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
☞ 대한민국 연말 풍경…국회 몸싸움
《 한나라당 김성회(경기 화성갑), 민주당 강기정(광주 북), 그리고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경남 사천). 18대 국회 들어 2008년 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해머 국회’를 연출한 민주당 문학진 의원(경기 하남) 이후 또 한 번 의사당을 ‘이종격투기장’으로 변질시킨 폭력 국회의 주역들이다. 김성회, 강기정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하는 폭력을 주고받았다. 이에 앞서 강 의원은 2009년 7월 국회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도 의석 위를 날아다니는 소동을 벌였다. 강기갑 의원은 2009년 1월 여당의 법안 처리에 항의하며 박계동 당시 국회 사무총장실에서 ‘공중 부양’을 하고 집기를 파손했다. 말 바꾸기가 잦은 여의도에서는 망각의 속도도 빨라서 이들의 폭력도 한때의 활극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김성회, 강기정 의원은 3월 7일 ‘목욕당’이라는 친선 모임의 만찬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이 달랐다”며 서로 팔을 감고 러브샷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3명의 지역구 주민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들이 세 국회의원의 지역구를 직접 찾아 1박 2일 동안 유권자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
“아, 커널(Colonel·대령) 김요? 아는 사람들끼린 그 사건 이후 종종 그렇게 불러요.”

16일 오후 경기 화성시 향남읍의 한 다방. 공인중개업자 J 씨는 ‘이 지역 국회의원인 김성회 의원을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른쪽 주먹을 앞으로 쭉 뻗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 의원은 예비역 대령이다. J 씨는 “지난해 예산안 처리 때 주먹 솜씨를 보여준 뒤 김 의원과 함께 동네 이름이 자주 거론됐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이후 화성이 부정적인 측면에서 언론에 그렇게 자주 다뤄진 건 처음”이라며 혀를 찼다.

동아일보가 16, 17일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의외로 지역구 의원들이 관련된 폭력사태를 비교적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동네 망신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 “우리 동네를 홍어×으로 아는가?”

J 씨가 “화성 민심 하면 이분”이라며 소개해 준 K 씨는 서울에서 대학 졸업 후 화성으로 내려와 30년째 사업을 하는 이른바 ‘지역 유지’다. K 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한나라당은 그런 사람을 공천하고, 그 사람은 또 그런 짓을 하는 걸 보니 화성을 홍어×으로 아는 모양이지?”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중앙정치 무대에서는 폭력이 일상화돼 면역이 생긴 듯한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김 의원이 폭력사건 이후 지역민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길 건너 24시간 편의점에서 만난 주부 B 씨는 “애들 교육에도 안 좋은 일 아닌가. 내년 총선까지 잘 기억해 두겠다”고 했다.

비슷한 시간 강기정 의원의 지역구인 광주 북구 내 중앙동 서방시장. 시민단체 간부인 Y 씨는 “강 의원이 17대 국회에서도 싸웠기에 싸우지 말라고 했고 본인도 약속했다. 그런데 또 그렇게 싸우더라. 이건 기본적인 자질의 문제”라고 비판했다. 시장 인근 길거리에서 만난 60대 후반의 S 씨는 “광주도 먹고살려면 어찌됐든 예산안은 통과됐어야 했다”며 “호남이 민주당 일색이다 보니 당선만 되면 자기네들 마음대로 해도 되는 줄 알고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17일 오후 경남 사천공항 인근 택시 안. 50대의 택시운전사 L 씨는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강기갑 의원의 공중부양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L 씨는 “폭력사태 직후에는 강 의원이 하도 민주당 돕는 일을 해서 민주당이 강 의원을 수입해 간다는 농담도 나왔다”고 전했다. 사천관광호텔에서 만난 직장인 Y 씨는 “공중부양한 게 사천 발전과 무슨 상관이 있었느냐. 동네 망신만 시킨 것 아니냐”고 분개했다.

○ “싸운다고 동네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

3곳의 지역 주민들은 한결같이 “폭력사태까지 벌여놓고 지역주민들의 살림이 나아진 게 있느냐”고 하소연했다. 화성에서 만난 J 씨는 “폭력 사태로 당에서 보상을 받았다면 지역에 무슨 기여를 하든지…”라며 말을 흐렸다.

실제로 화성시는 향남제2택지, 황해경제자유구역 등 개발에 대한 기대감은 높지만 주요 사업의 진척이 더뎌 실제 이뤄진 것은 많지 않고 지역경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세금도 폭등해 향남읍 일대 전용면적 84m² 크기의 아파트는 2년 전 6000만 원에서 요즘은 1억5000만 원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최근에는 구제역까지 겹쳤다.

광주는 북구를 비롯해 시내 전체가 2005년 전남도청이 무안으로 옮겨간 뒤 경기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천도 국도 3호선 확장공사가 당초 일정보다 한참 늦은 8년 만에 최근 간신히 마무리됐을 정도로 민생현안이 산적해 있다.

삼천포 중앙시장에서 생선을 팔던 할머니 C 씨는 “우리 동네 의원님이 자꾸 (하늘을) 날아다니고 재판받고 한다는데 물가도 자꾸 하늘로 치솟는다. 힘들어서 그냥 팍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힘없이 말했다. 광주 서방시장에서 만난 60대 주부 K 씨는 텅 비다시피 한 장바구니를 보여주며 “물가가 무섭게 오르는데 힘을 쓰려면 물가 잡는 데 힘을 써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17일 오전 화성 발안시장에서 다시 만난 K 씨는 “오늘이 오랜만에 동네 잔칫날”이라고 말했다. 화성시 향남읍에 대형마트가 문을 여는 날이기 때문. 마침 김 의원 사무실 바로 건너편이다. K 씨는 “유권자가 정치인에게 무슨 정치철학 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4년간 세금으로 자기들을 밀어주는 주민들을 위해 최소한의 역할만이라도 해달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저런 것을 좀 끌어와 편안히 먹고살 환경만이라도 갖춰주면 고맙겠다”면서 마트 개관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을 손으로 가리켰다.

화성=이승헌 기자 ddr@donga.com
광주=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사천=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 “정치가 그렇지 뭐… 안싸운적 있나” 체념-동정론도 ▼


지역구 3곳에서 만난 유권자 가운데는 어쩔 수 없었던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며 동정론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다. “정치는 원래 그런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화성시 발안시장 내 약국에서 만난 주부 D 씨는 “한국 정치가 언제 안 싸운 적 있었느냐. 김성회 의원이 운이 없어 언론에 유달리 부각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화성시 향남읍 대형마트에서 만난 판매원 S 씨는 “야당이 예산안 처리를 무조건 막는데 계속 기다릴 수만도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김 의원을 거들었다.

광주 북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M 씨는 “한나라당이 자주 날치기를 하니까 강기정 의원이라도 나서서 막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폭력은 문제지만 책임을 묻자면 여야 쌍방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주부 U 씨도 “그렇게라도 막아야 다음에 한나라당이 날치기를 안 할 것 아니냐”며 강 의원을 옹호했다.

사천시 사남농공단지 인근에서 만난 주부 K 씨는 “강기갑 의원이 공중부양을 했다고 희화화됐지만 소수의 힘으로 옳지 않은 일을 막으려면 그런 방법도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폭력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 간부인 L 씨는 “강기갑 의원 사건으로 사천이라는 조그만 동네의 브랜드가 알려지는 효과도 있지 않았느냐”며 웃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 ‘협상의 정치’ 명패에 얻어맞고 해머에 부서졌다 ▼
폭력 갈수록 늘고 강도 세져… 이만섭前의장 “지도부도 문제”


국회폭력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국회에서 서로 당론이 맞부딪칠 때면 종종 크고 작은 물리적 충돌을 빚어왔다. 1990년 7월 방송법, 한국방송공사법 등의 국회 문화공보위원회 상정을 놓고 당시 민주자유당 최재욱 의원이 평화민주당 김영진 의원에게 “넌 뭐야, 이 ××야”라고 욕했다가 화가 난 김 의원이 던진 위원장 명패에 입술을 맞아 전치 4주의 상처를 입었다.

여당이 새해 정부 예산안을 강행처리할 때마다 야당은 연례행사처럼 국회 본회의장 출입문을 부수며 폭력을 행사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야당이 나름의 명분을 갖고 있다 보니 여당이 상대적으로 크게 반발하지 않았고 대규모 폭력 사태로 번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들어 민주화 바람을 타고 운동권 출신을 비롯해 젊은 의원들이 대거 국회에 들어오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폭력의 빈도와 강도가 오히려 강해졌다. 1996년 9월 1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실에서 국정감사 증인 채택 문제를 놓고 여야 간사가 협의를 하던 중 자유민주연합 정우택 의원이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새정치국민회의 방용석 의원의 오른쪽 이마를 유리컵으로 3차례 때려 상처를 입혔다.

최근에는 여성 의원들까지 폭력사태에 등장하고 해머, 전기톱 등의 ‘연장’ 사용도 잦아지고 있다. 민주당 문학진 의원은 2008년 12월 1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막겠다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비서실 출입문을 해머로 내리쳤다. 한나라당이 비준동의안을 단독 상정하기 위해 회의장을 점거하고 출입문을 봉쇄하자 민주당은 배척(일명 빠루)과 전기톱을 동원해 문을 부쉈고 양측은 격렬하게 충돌했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 폭력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여야 사이에 물밑 대화나 협상이 있어서 정치가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장은 “의원들의 기본 자질이 가장 큰 문제이고, 나아가 정당 지도자들의 리더십에도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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