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연평도 포격 도발]포격 당시 ‘아수라장’ 현장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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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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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 굉음 터지자 곳곳 불길… “전쟁났다” 주민들 패닉

《“쿠쿵 꽝, 꽝, 꽝….” 23일 오후 2시 34분경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당섬나루터에서 1km 정도 떨어진 연평면 서부리 집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최율 씨(53)는 갑작스러운 폭발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는 강한 진동에 깜짝 놀라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허겁지겁 도로변에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집에서 불과 30여 m 떨어진 식당 ‘진미정’이 포탄에 맞은 듯 반파된 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곧이어 연평면사무소 뒤편 야산에도 포탄 2, 3발이 떨어져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인근 남부리 주택 3, 4곳에서도 굉음과 함께 포탄이 잇따라 터지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순간 ‘전쟁이 일어났다’고 판단한 최 씨는 도로변에 넋이 나간 듯 주저앉은 주민 수십 명을 일으켜 세우며 큰 소리로 “포탄이 떨어졌다. 빨리 집 밖으로 나오라”며 고함을 치면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최 씨는 “어떻게 방공호로 대피했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 무차별 도발에 아수라장

마을에 떨어지는 포탄 ‘아찔한 순간’ 23일 오후 북한의 포격 도발로 평온한 일상이 이어져오던 연평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포격을 당한 연평도 곳곳에 화염과 연기가 치솟자 깜짝 놀란 주민들이 황급히 대피하고 있다. KBS 뉴스9 화면 캡처 ☞ 사진 더 보기
마을에 떨어지는 포탄 ‘아찔한 순간’ 23일 오후 북한의 포격 도발로 평온한 일상이 이어져오던 연평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포격을 당한 연평도 곳곳에 화염과 연기가 치솟자 깜짝 놀란 주민들이 황급히 대피하고 있다. KBS 뉴스9 화면 캡처 ☞ 사진 더 보기
연평도 주민들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주택가와 야산, 군부대 주변 곳곳에 포탄이 터지면서 섬 일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고 긴박한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조기역사관을 비롯해 해성여관, 임경업 장군 사당과 인근 탄약고 등을 비롯해 건물 8개가 포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착장에서는 어린아이가 포격에 놀라 “아빠, 빨리 와”를 외치며 울부짖기도 했다.

최 씨는 “이날 20분 이상 포탄 50여 발이 떨어지면서 마을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며 “주택 10여 채와 야산 등에서 불이 치솟았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진화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민 곽모 씨는 “방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지붕 한쪽이 날아갔다”며 “급히 가족을 데리고 집 앞에 있는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고 전했다. 주민 윤희중 씨(48)는 “불과 20m 앞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카니발 승합차가 공중으로 붕 떴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며 “폭탄을 맞고 죽느니 서둘러 연평도를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주민 성복순 씨(56·여)는 “전쟁이 난 줄 알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며 “포탄을 맞아 반파된 채 불이 난 주택이 꽤 많아 다치거나 숨진 주민이 많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일부 배전선로가 파손되면서 연평도 전체 924가구 중 420가구가 정전 피해를 당해 어둠 속에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동영상=연평면사무소에 포탄 떨어지는 모습


○ 긴급 안내방송에 속속 대피

우리 군으로부터 비상상황을 전달받은 연평면사무소는 즉시 주민들에게 “현재 위치에서 가까운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을 계속 내보냈다. 평소 대피훈련을 받아 온 주민들은 19개 민방위 대피시설과 방공호 등으로 피신했다. 이날 오후 3시경에는 승객 200여 명을 태우고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한 여객선이 연평도에 도착했으나 북한의 도발 소식을 전해 듣고 신속하게 회항했다.

또 연평초중고교에 다니는 학생 120여 명은 포탄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자 교실에서 즉각 빠져나와 학교 뒤편 산 쪽에 있는 대피소로 피신했다. 이 학교 하준 교감은 “포탄 폭발음과 진동 때문에 교실 유리창문이 대부분 깨졌다고 들었다”며 “학생들과 교사들이 다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경은 이날 오후 3시경부터 서해 연평도와 덕적도 인근에서 조업하던 어선 87척을 남쪽으로 피항시켰으며 오후 1시경 연안부두를 출발해 대청도로 운항하던 여객선 등 2척을 다시 연안부두로 돌려보내는 등 모든 여객선 운항을 중단시켰다.

○ 전화 두절돼 발 동동

이날 북한의 도발로 연평도 내 유선전화는 물론이고 휴대전화가 대부분 불통되면서 연평도 주민들과 육지에 사는 친인척들은 가족과 친지들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옹진군 김원영 건설재난과장(53)은 연평도에 홀로 살고 있는 어머니 박규돈 씨(74)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아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집 전화도 포격으로 전기가 끊기면서 불통된 상태다. 김 과장은 “어머니와 연락이 안 돼 3시 45분경 연평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지만 친구도 알지 못했다”며 “다치시진 않았는지 몰라 너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옹진군은 연평도에 폐쇄회로(CC)TV 3대를 설치했지만 북한의 도발로 2대가 고장 나는 바람에 관제실에서 TV 1대에 의존해 현지 상황을 주시했다.

○ 백령도 주민도 긴급 대피령

이날 오후 백령도 인근의 북한군 해안포 기지도 포진지를 개방하는 등 발사 태세를 갖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백령도 주민들도 방공호로 긴급 대피했다. 김정섭 백령면장(52)은 “일단 노약자와 어린이들부터 방공호로 대피시킨 뒤 나머지 주민들도 방공호에 머물도록 안내하고 촛불과 난방용품을 공급했다”고 전했다. 이날 오후 4시에는 대청도와 소청도 주민들에게도 대피령이 발령됐다. 인천시교육청은 연평도 백령도 등 서해5도 초중고교에 무기한 휴업 조치를 내렸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동영상=공포에질린 연평 주민들 밤늦은 피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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