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지난 11년간 1700억 삼켰다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국회의원과 지방선거 당선자의 당선 무효나 사퇴 등으로 인해 선거를 다시 치르는 데 쓰인 국민 세금이 2000년 이후 17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적으로 한 해 예산이 1700억 원에 미치지 못하는 지방의 기초단체가 20곳에 달하는 현실에서 막대한 세금이 ‘이중 선거’로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31일 동아일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0년 이후 올해 10·27 재·보궐선거까지 재·보선은 모두 22차례에 걸쳐 560곳에서 치러졌다. 이 중 기초의원이 295곳으로 가장 많고 △광역의원 129곳 △기초단체장 75곳 △국회의원 57곳 △광역단체장 4곳 순이었다.

이들 선거에 사용된 세금은 모두 1710억9000여만 원에 이른다. ‘초미니 선거’로 불린 10·27 재·보선만 해도 △기초단체장 2곳 △광역의원 1곳 △기초의원 3곳 등 단 6곳의 선거를 치르는 데 20억여 원이 쓰인 것으로 선관위는 잠정 집계했다.

국회의원 선거만 놓고 보면 57곳 중 32곳에서 당선자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이 박탈돼 재선거가 치러졌다. 또 6곳은 당선자가 공직선거법 외에 개인 범죄로 피선거권을 상실해 보궐선거가 치러진 곳이다. 결국 국회의원 전체 재·보선의 66.7%인 38곳에서 당선자의 비위 행위로 생긴 빈자리를 채우는 데 국민 세금이 낭비된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회 일각에선 여야가 공직선거법 개정을 논의할 때마다 사망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보선 사유를 발생시킨 당선자에게 선거비용을 부담시키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선관위도 ‘원인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자는 데 적극 찬성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당선 무효나 피선거권 박탈로 재·보선이 치러지는 경우 당선자에게 이미 지급된 선거운동 보전비용이라도 거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의는 그동안 정치권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스스로 목줄을 죌 필요가 있느냐’는 여야 의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탓이다. 다만 재·보선 횟수는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 선거 사유가 발생할 때마다 제각각 치렀던 재·보선은 2000년 2월 이후 상·하반기 2차례로 ‘통합’됐다.

하지만 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는 여전히 2차례의 재·보선을 포함해 한 해 3번이나 선거가 치러졌다. 6월에 전국 지방선거가 실시된 올해가 그랬다. 여야가 대통령실장에 임명돼 국회의원직을 내놓은 임태희 실장의 사직서 처리를 미루면서까지 10·27 재·보선에 국회의원 선거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도 올해에만 지방선거와 7·28 재·보선을 치르며 힘겨운 ‘시소게임’을 벌였기 때문이다.

선관위 김용희 선거실장은 “직접적으로 투입되는 재·보선 비용도 문제지만 아무리 소규모 선거라 해도 중앙당이 직접 나서면서 간접적으로 들어가는 정치적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재·보선은 주민 참여도도 낮아 대표성 문제까지 생긴다”고 지적했다.

재·보선의 투표율은 지방선거는 평균 25%, 국회의원 선거는 34% 정도에 불과하다. 올해 6·2지방선거(54.5%)나 2008년 총선(46.1%) 등 전국 단위 선거와 비교해 재·보선의 투표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국회 입법조사처 이현출 정치·의회팀장(정치학 박사)은 “국민의 혈세가 이중으로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 득표한 2위가 그 자리를 승계하는 방식 등 선진국의 제도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의원 공석’ 선진국선 어떻게 ▼
佛 미리 등록한 대리후보로 교체, 日 석달내 유고땐 차점자가 승계


선진국들은 잦은 선거로 인한 예산낭비를 막기 위한 제도적 방안들을 마련해 놓고 있다.

▽프랑스=특정 이유로 의원의 결원이 생길 경우 한국의 재·보궐선거에 해당하는 ‘부분선거(´election partielle)’를 치르지 않고 대리후보로 교체하는 제도가 있다. 대리후보는 후보 등록 시 후보가 원하는 사람을 지명해 함께 등록한다.

하원의원의 경우 사망하거나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되거나, 6개월 이상 다른 공직을 수행해야 할 경우 다음 총선거까지 대리 후보가 역할을 대신한다. 하지만 이 세 경우를 제외한 사직(辭職) 또는 선거법 위반 등의 이유로 공석이 됐을 경우 3개월 이내에 부분선거를 치른다. 이 경우도 해당의원의 임기가 1년 미만일 경우 선거 없이 대리후보가 임기를 대신한다.

대리후보 제도는 예산낭비를 막고 총선거에서 행해진 유권자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기 위한 것이다. 대리후보는 의원 역할을 하더라도 자신의 직업이나 사업 등 평소 해온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세비도 없다.

상원의원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경우 1999년부터 2007년까지 363건의 공석이 발생했으며, 이 중에서 사망에 의한 경우가 35.81%, 겸직금지에 의한 공석이 36.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 선거구에서 결원이 생기면 보궐선거를 실시하지만 실시 기준은 매우 엄격한 편이다.

우선 중의원과 참의원의 경우 선거 직후 3개월 이내에 당선자가 의원직을 상실했을 경우에는 2위를 차지한 후보가 의원직을 대신 승계할 수 있는 이월보충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차점자라고 하더라도 해당 선거구에서 선거 유효투표 총수의 6분의 1 이상을 득표해야만 한다. 일본에서는 중의원의 경우 2000년 들어서만 26명, 참의원의 경우 2001년 이후 15명의 2위 득표자가 보궐선거 없이 의원직을 얻었다.

▽미국=미국에서는 주상원의원의 경우 특별선거 없이 주지사가 잔여 임기 동안 상원의원을 지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오리건, 위스콘신, 오클라호마 주는 예외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동아논평 :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쌈짓돈 아니다
▲2010년 9월15일 동아뉴스스테이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