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풀어보는 새해정국]<8·끝>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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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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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을 출마?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다”

지난해 12월 중순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사진)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의 전화를 받았다. 이 위원장이 며칠 전 박 의원의 지역구인 전남 목포를 방문해 토지가 수용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마을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해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박 의원은 “신경 써 줘서 감사드린다”고 했고, 이 위원장은 “무슨 말씀이시냐. 전화 주셔서 제가 감사하다”고 답했다.

최근 서울역에서 KTX를 기다리던 이 위원장과 우연히 마주친 한나라당의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도 “우리 지역 민원도 좀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로 불리는 이 위원장이 ‘민원 해결사’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위원장이 지난해 9월 30일 취임한 뒤 17일까지 110일 동안 전국적으로 다녀온 민원 현장은 171곳이다. 그는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서울 은평구 구산동 집 앞에서 버스를 타서 40분 뒤에 권익위 사무실에 도착한다. 권익위 앞에서 1인시위를 해온 민원인이 이 위원장 취임 후 ‘아침 출근시간’을 1시간 반 정도 앞당겼을 정도다.

그는 최근 기자와 만나 ‘이명박 정권의 2인자’ ‘실세’란 수식어에 대해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왜 실세란 말이 붙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도 “잘되지 않겠느냐”고만 했다. 정치권의 민감한 이슈에는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관심은 벌써부터 그의 정치권 복귀 시점에 쏠려 있다. 특히 한나라당 내 친이(친이명박) 진영의 전열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은 그의 ‘공백’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많다. 이 위원장의 복귀 시점에 친이계는 물론이고 친박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전 대표의 의원직 상실로 7월 치러질 서울 은평을 재선거는 그가 정치권에 진입하기 위해 넘어야 할 1차 관문이다. 6월 지방선거 후 실시될 정기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권에 도전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위원장은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7월 재선거 출마 계획’에 대해 “지금은 솔직히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민원)현장 방문도 바쁘고. 7월에 선거가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다”라고 피해 갔다. 그러면서 “현직도 매우 중요하고 해야 될 일이 많다. 정치일정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다만 “임기를 채우고 못 채우고 하는 것이 제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다. 직원이 일을 잘못해서 중간에 책임지고 그만둘 수도 있는 것이고…”라며 여운을 남겼다.

그가 정치권 복귀를 결심해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은평을 재선거의 경우 친박계 정인봉 전 의원이 ‘맞출마’를 준비하고 있고, 민주당에서도 중량급 인사를 투입할 태세다. ‘물과 기름’ 사이가 된 박 전 대표 측과의 관계 개선 여부도 그의 당 복귀가 연착륙할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당내에서는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를 이끄는 진수희 의원 등이 그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안경률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으며 의원 70여 명이 참여한 친이계 모임 ‘함께 내일로’는 이 위원장을 정치적으로 뒷받침할 조직이란 관측이 많다. 다만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과 갈등 기류를 형성하면서 친이계 내에서 그에 대한 지지세가 예전 같지 않은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이 위원장 특유의 친화력과 돌파력이 정치권 복귀에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지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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