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한 대응” 비난에 ‘신중모드’ 접어

  • 입력 2009년 9월 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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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정부, 첫 北사과 요구
남북대화 국면 감안 北 자극 피하다 판단 바꿔

정부가 8일 임진강 무단 방류로 6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참사에 대해 북한에 사과를 요구한 것은 정부의 미온적 대응에 비난 여론이 비등한 데 따른 방향 전환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대북정책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판단 실패가 여실히 드러났고, 대북정책의 주무 부처인 통일부가 청와대에 휘둘리는 구조적인 난맥상도 있었다.

이번 참사가 발생한 6일만 해도 청와대 내부에서는 명확한 원인이 규명되기 전까지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응을 삼가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지금 왜 수공(水攻)을 하겠느냐. 시스템의 문제인지, 사람의 문제인지, 기계의 문제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국민 정서를 안 좋게 몰고 가면 (남북이) 서로 이로울 게 없다”고 말했다. 어렵게 찾아온 남북 간 대화 국면을 살리기 위해 북한이 저지른 것이 분명한 사건에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방침을 나타낸 것이다.

이에 따라 통일부는 여론의 ‘북한 책임론’을 희석하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통일부는 이날 오전 5시 야영객들이 강물에 휩쓸리고 14시간이 지난 오후 7시에야 세 줄짜리 형식적인 자료를 언론에 e메일로 배포했다. 자료는 “국토해양부와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이라고 밝혀 자체 판단이 아님을 강조한 뒤 북한의 소행이 분명한 사건의 원인에 대해 “북한 지역으로부터의 예측치 못한 수량 유입 증대에 기인한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통일부 당국자들은 북한에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선 진상규명, 후 사과요구’가 정부의 원칙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7일 북한이 보내온 답신 통지문이 남측 인명피해에 일말의 유감도 표현하지 않는 등 정부도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이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청와대 내부의 정치적 판단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김성환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8일 “북의 설명이 미약해 우리 수준에 맞지 않았던 것이고 그에 따라 논평으로 공개적으로 사과를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명의로 북한의 사과를 요구하는 논평을 냈다. 한 당국자는 “사전 판단은 할 수 없고 사후 비난은 받아야 하는 통일부의 처지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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