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행정개편과 동상이몽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행정구역 개편을 제안한 뒤 곧바로 경기 성남시와 하남시 시장이 통합 추진을 전격 발표하는 등 전국 10여 곳에서 지방자치단체 간의 통합 논의가 활발하다. 행정안전부는 올해 안에 통합하는 지자체에 50억 원씩을 지원하고, 통합 후 10년 동안은 기존 지방교부세 금액의 60%를 추가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통합 논의가 많았지만 지역 간 힘겨루기와 지자체장들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에 실제 성사된 곳은 별로 없었다.

성남시와 하남시의 통합이 성사되면 인구 110만 명의 거대 도시가 탄생한다. 그러나 역사적 문화적으로 같은 권역의 광주시가 빠진 데다 시민단체와 정당 등에서 일방적인 추진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분당신도시는 성남에서 독립하고 싶어 하는 동상이몽(同床異夢) 현상도 있다. 그래서 두 시장이 내년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해 행정통합을 정치적 승부수로 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 남양주시(인구 50만5000명)는 구리시(19만5000명)와의 통합을 제의했지만 상대적으로 열세이고 서울과 인접한 구리시는 한 발 빼고 있다. 더구나 남양주시장은 한나라당, 구리시장은 민주당 소속이어서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다.

충북 청주시(64만4000명)와 청원군(14만9000명)은 통합 필요성이 가장 절실한 곳으로 꼽힌다. 두 지역은 같은 청주읍이었다가 1946년 청주부와 청원군으로 나뉘었다. 1995년과 2005년 행정구역 통합을 위한 주민투표에서 청원군의 반대가 많아 무산됐다. 그러나 두 지역은 동일 생활권이다. 청원군 중학교 졸업생의 65%가 청주의 고교에 진학하고, 군청 등 청원군의 주요 행정기관 25개가 모두 청주 시내에 있다. 청주 상당경찰서와 흥덕경찰서가 반반 나눠 청원의 치안을 담당한다. 그런데도 청원군은 “오창과 오송 등 독자적인 발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청주에 편입되는 것보다 독자적인 시 승격을 추진하겠다”며 새로운 시청사와 행정타운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청원군의 주민들도 통합에 찬반이 갈려 대립하고 있다.

상급기관인 충북도는 원칙적으론 통합이 필요하다면서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청주와 청원이 통합하면 인구가 79만 명으로 충북 인구(155만 명)의 절반을 차지하게 돼 도의 기능과 힘이 약화될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이처럼 행정통합의 총론에는 찬성하면서도 각론에 반대하는 것은 자치단체장, 지방의회 의원, 공무원 등 이해관계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다 한동네인 데도 한 고장에서 편을 가르고 반목하는 소(小)지역주의도 발목을 잡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주민의 생활권과 경제권이 점점 확대되는 데도 행정구역이 달라 주민들의 불편이 심한 곳이 많다.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를 충당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49.6%에 이른다. 특히 농촌지역은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자체마다 청사, 주민회관, 체육관을 따로 짓는 등 중복투자가 심하고 유휴시설이 수두룩하다. 이제 지자체장들은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주민편의와 ‘고비용 행정구조’ 개선을 위해 열린 자세로 적극 나서야 한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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