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파격 만찬-우호적 대화… 北-美관계 급진전 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8월 5일 02시 57분



北‘美환심사기’ 주력… 대내외 상황 절박감 엿보여
오바마 구두메시지 싸고 北“받았다” 美“그런 거 없다”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전격 회동이 앞으로 북-미 관계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북한 발표에 따르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날 평양에 도착한 뒤 바로 김 위원장을 만났고 그와 만찬을 함께했다. 두 사람은 사전에 면밀히 준비된 절차에 따라 짧은 시간에 양국의 주요 현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구두메시지를 전달했는지를 두고 양국 간에 엇갈린 주장이 나오는 등 장외 신경전이 팽팽한 상황이다.
○ 우호적인 대화와 파격적인 만찬
북한 매체들은 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중개자로 해 모종의 진정성 있는 의사를 교환했다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오바마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구두메시지를 전했고 김 위원장은 이에 사의(謝意)를 표시했다는 게 북한 측 주장이다. 북한 매체는 또 김 위원장이 오바마 대통령을 대신해 온 클린턴 전 대통령과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진지한 담화와 폭넓은 의견교환’을 했다고 전했다.
미국 측은 당장 오바마 대통령의 메시지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전후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은 북한에 여기자 석방 결정에 고마움을 전하는 동시에 북한에 대한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문제에 유감을 표명한 뒤 북-미 양자협상을 전제로 9·19공동성명의 정신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쳤을 가능성이 있다. 6자회담 무력화를 시도해 온 북한으로서는 미국을 붙잡기 위한 회심의 카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베푼 만찬 역시 그런 점에서 파격적이다. 올해 4월 헌법 개정에 따라 권한과 위상이 대폭 강화된 국방위원회가 주최했다. 김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군의 최고위급 인사가 대거 참여한 것은 그만큼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위원장은 이날 만찬을 통해 자신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재하며 북한의 노동당 이외 국가기관을 관장하는 최고기관인 국방위원회를 정상적으로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국 측에 과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 북한의 속내는 무엇?
북한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극진하게 맞이한 것은 그만큼 대내외 상황이 절박하다는 속내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김일성 주석 출생 100주년, 김 위원장 출생 70주년을 맞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정하고 김 위원장의 3남 정운을 후계자로 세우려는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예상을 깨고 강경한 대북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자 석방이라는 인도적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올해 1월 20일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장거리 로켓을 이동시키며 의도적으로 미국의 새 행정부를 자극했다. 이어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4월 5일 장거리 로켓을 쏘고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실시해 긴장을 고조시켰다. 북한의 대미 공세는 6월 13일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의 존재를 시인하면서 최고조에 달했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반발과 강력한 제재를 초래했다.
북한은 3월 17일 미국 여기자 2명을 억류하면서 대미 공세에 대한 미국의 반발을 무마 또는 완화할 카드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카드를 사용하기 위해 6월 8일 서둘러 재판을 끝낸 뒤 지속적으로 미국에 고위급 특사 파견을 요구했다. 추가로 국제사회를 자극할 카드가 소진된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는 불리한 국면을 관리 또는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물론 북한도 여기자 석방만으로 미국이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 내 여론의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여기자 석방이라는 인도적 문제를 먼저 푼 뒤 미국 행정부와 여론의 동향을 살펴가며 추가적인 대미 접촉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은 “일단 미국 여론의 환심을 얻고 북-미 대화 등을 추가로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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