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先 쇄신안 마련, 後 당청회동”

  • 입력 2009년 6월 8일 02시 50분


“쇄신의 논리-줄거리 없다”
靑회동 일정 연기 가능성
당청갈등 盧정부때 최고조

“답답해서 하신 말씀이죠.”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7일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나라당 일각의 당정청 쇄신 요구에 대해 “국면전환용 개각은 없다” “국민의 가장 큰 갈증은 역시 경제다”라고 강조한 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청와대는 ‘경청’과 ‘숙고’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면에선 “쇄신을 요구하려면 먼저 자기희생의 각오와 대안을 갖춰야 하는 것 아니냐” “물러나라는 얘기만 있지 쇄신의 정확한 논리와 줄거리가 없는 상태다” 등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주 이뤄질 것으로 보이던 당청 회동도 미뤄지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이날 ‘선(先) 쇄신안 마련, 후(後) 당청 회동’의 태도를 밝혔다. 당이 통일된 의견을 정리해 오면 그걸 놓고 받아들일지 말지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당청 간의 긴장은 정치권에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도 청와대와 여당은 집권 기간 내내 티격태격할 때가 많았다. 정치사를 되돌아보면 청와대는 여당발(發) 쇄신 요구가 불거질 때마다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수용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야당 공세에 대응하는 것도 힘든데 왜 여당이 난리냐” “한 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 등의 인식에다 “감히 어디다 대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야” 하는 묘한 자존심 싸움까지 겹치면서 ‘마이 웨이’를 고집한 적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DJ) 정부 시절 당시 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DJ의 면전에서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퇴진을 요구했고, 권 최고위원이 보름 만에 최고위원 직을 내놓은 것은 예외에 속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당청 갈등이 극에 달했다.

자존심이 유달리 강했던 노 대통령은 집권 1년차이던 2003년 10월 “정보와 권력을 독점한 문제의 핵심 인물을 경질해야 한다”며 자신의 오른팔인 이광재 대통령국정상황실장을 겨냥한 천정배 의원의 쇄신 요구를 마지못해 수용한 이후로는 당 측의 의견을 거의 무시했다.

특히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천 의원이 당이 청와대를 이끌어야 한다는 ‘견인론’을 주창하자 정책통인 이해찬 의원을 ‘실세 총리’로 발탁해 내각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응수했다. 노 대통령은 여당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발탁하거나 김병준 전 대통령정책실장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임명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 당청 갈등이 특히 심하긴 했지만 당청 긴장관계는 구조적인 측면도 있다. 국정 운영에 있어서 여당 의원, 특히 대선 승리에 기여했던 의원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장관 등으로 입각하지 않는 한 인사권에서 별다른 파워를 행사하지 못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정책위의장 등 일부를 제외하곤 정부 설명을 청취하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 요즘 당 주변과 친이(친이명박)계 의원 일각에서 “대통령을 호가호위하는 세력이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여론에 휘둘리기보다는 집권 5년 동안 어떤 실적을 남길 것인가가 1차 관심사인 반면 여당 의원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선거에 민감한 것도 정국 인식의 차이를 낳는다.

물론 집권 여당의 뒷받침 없이는 어느 정부도 성공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의 교훈이다. 국정 수행은 늘 선거로 평가를 받는다. 이명박 정부도 독선과 독주의 덫에 갇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당의 쇄신안이 진정성을 갖고 국민적 명분이 있다면 청와대가 이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며 “그렇지만 쇄신 논의가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쇄신 논의를 바라보는 청와대의 인식이 함축돼 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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