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제균]이런 정치는 없었다

  • 입력 2009년 5월 29일 02시 57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이 정치 보복 때문이라고?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왜 노 전 대통령의 가족과 친지, 집사와 측근, 후원자 등이 거액의 금품수수와 청탁에 연루됐음에도 재임 당시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을까? 거기에 노 전 대통령 일가뿐 아니라 한국 정치의 비극이 담겨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적어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때는 비록 임기 말이기는 했지만, 최고권력자도 자식들이 감옥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노 전 대통령 때 그만한 자정(自淨) 시스템도 작동하지 못한 것은 한국 정치의 퇴보를 의미한다. 10여 년을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든 확신은 한국 정치의 생산성이 갈수록 급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작금의 상황을 보면 ‘이런 정치는 없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수가 반대했던 청계천 공사를 밀어붙였던 ‘불도저 대통령’에게선 좀처럼 강한 신념과 비전을 느낄 수 없다. 벌써 여권 내에서조차 영(令)이 서지 않는 가운데 TK(대구경북) 독식 인사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도 물결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실망도 읽힌다.

여당은 어떤가.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에게 줄 선 친박근혜계와 벌써 분열조짐을 보이는 친이명박계에 월박(越朴), 주이야박(晝李夜朴)이 엉키면서 170석의 거대여당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하다. 경선 승복의 드라마를 연출했던 박근혜 전 대표는 촛불정국을 비롯한 국가 위기상황에 침묵하면서 일개 계파 수장으로 입지를 좁힌 느낌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북한 핵실험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냉전적 대북정책이 불러일으킨 결과”라고까지 했다. 국제사회가 이구동성으로 불 지른 자를 규탄하는데 화재 피해를 본 쪽을 더 비난하는 민주당은 대체 어느 나라 당인가.

대통령과 여야가 이 모양이니 정치의 산물인 정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정부는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한다고 했다가 우물쭈물하더니 2차 핵실험이 터지고서야 부랴부랴 들어갔다.

정말 이런 정치는 없었다. 더는 열매 맺지 못하는 ‘불임정치’는 우리 정치의 문제가 ‘사람’이 아닌 ‘구조’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역대 대통령에게 레임덕이 점점 빨리 찾아오는 것도, 거대 여당이 유력한 차기 주자의 눈치를 보며 지리멸렬하는 것도, 구심점이 될 차기 주자가 없는 제1야당이 선명성 경쟁에 몰입하는 것도 대통령 단임제의 한계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통령 중임제로 가면 나아질까. 대선 때만 되면 온 나라가 달떠 내 편, 네 편으로 갈리는 국민의식이 고쳐지지 않는 한 단임제든 중임제든 별반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술자리에서 지지하는 대선후보가 다르다고 다투다 칼부림을 했다는 가십 기사가 나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원래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제는 제국이나 연방 경영에 걸맞은 제도다. 큰 나라 중에도 대통령제는 미국이나 러시아, 프랑스처럼 제국을 경영했거나, 경영하고 있는 나라만 하고 있다.

별로 크지도 않은 나라가 대통령제에 매달려 ‘전부 아니면 전무’의 이전투구를 벌이며 국가적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젠 논의해볼 때가 됐다.

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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