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세리머니가 또 벌어진다. 북한은 27일로 예정된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 장면을 전 세계에 보여주겠다며 한국의 MBC와 미국의 CNN, 일본 중국 러시아의 통신사를 초청했다. 북한이 언론사에 참가비를 요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경위야 어떻든 냉각탑 폭파를 취재하게 된 매체들이 얼마나 요란을 떨지는 쉽게 짐작이 된다. 문을 꼭꼭 닫고 지내는 북한이 경수로 착공식 때처럼 폭파 행사를 외부에 공개하는 게 예사롭지 않긴 하다.
▷경수로 사업은 착공 9년 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한국이 부담한 11억3700만 달러를 포함해 15억 달러가 넘는 돈이 사라졌다. 북한은 그 사이 은밀히 핵 개발을 계속해 재작년 핵 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북한에 다시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냉각탑 폭파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냉각탑은 20여 m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냉각 및 증발장치는 이미 제거돼 껍데기만 남아 있다. 북한이 미루고 있는 핵 불능화 조치인 폐연료봉 인출, 미사용 연료봉 처리, 원자로 제어봉 구동장치 제거에 비하면 그야말로 쇼일 뿐이다.
▷북한도 동의한 ‘10·3 합의’는 냉각탑 폭파 같은 쇼가 아니라 핵시설 불능화와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가 핵심이다. 북한이 곧 신고서를 제출한다 해도 약속시한은 이미 반년이나 지났다. 검증을 통해 사실 여부를 가리는 작업도 만만치 않다. 이번에야말로 북핵 공포에서 확실하게 벗어나려면 본격적인 핵 폐기 단계에 돌입하기 전에 긴장을 풀어선 안 된다. 북한의 술수를 세계와 남한이 알 만할 때도 됐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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