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는 어디에서 뭘 하나

  • 입력 2008년 6월 6일 02시 53분


도마 위에 오른 ‘역할론’

총리실 “부처 조정권한 없어 한계”

전문가 “역할나눠 국정효율성을”

한승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29일 고유가 대책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주재한 뒤 결과를 발표하자 청와대는 “미흡하다”고 질책했다. 그러자 국무총리실엔 불편한 기류가 흘렀다. 국정 조정 권한도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청와대가 총리 주재 회의를 비판할 수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당시 고유가 장관회의에 배석한 정부 당국자는 “유류세 인하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세수 부족을, 국토해양부는 향후 화물연대와의 협상력 부재를 내세워 반대해 결론을 못 냈다”며 “대통령이 총리에게 권한 위임을 안 하니 장관들도 자기 주장만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로 촉발된 민심 악화로 위기를 맞자 총리의 역할론이 도마 위에 올랐다. 총리를 포함한 개각설도 나오고 있다.

총리실은 이런 분위기가 불만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한 총리 입장에선 힘 갖고 제대로 한 번 국정운영도 못해보고 그만둔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국무총리실은 현 정부에서 인원이 반으로 줄었다. 한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독대는 드물었다. 대신 자원외교 등 새 역할을 맡았으나 정부가 위기에 빠지자 ‘총리 역할 부재’가 두드러지게 됐다.

이런 기류를 의식한 듯 최근 한 총리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1일 한 총리는 강만수 재정부 장관을 총리 공관으로 불러 유류세 인하를 포함한 고유가 대책을 논의했다. 현충일인 6일 오후엔 고려대 연세대 등 5개 대학 총학생회의 요청에 따라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대학생들과 시국토론회를 갖는다.

학생회 측은 1991년 민주화 시위 때 한국외국어대에 방문한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가 밀가루와 계란 세례를 받은 뒤 학생운동권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던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도 토론회 참석을 수락한 것은 총리의 의지로 해석된다. 한 총리는 8일 오전에는 총리공관에서 고위 당정협의회에 참석해 고유가 대책을 포함한 민생안정종합대책을 발표한다.

헌법에는 총리의 역할이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 부를 통할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대통령의 뜻이 총리의 역할을 정한다. 총리는 정권 따라, 사람에 따라 ‘실세형’과 ‘얼굴마담형’을 오갔다. 자원외교에 집중하던 ‘실무형’ 한 총리가 쇠고기 정국에서 ‘얼굴마담형’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이러다 자칫 ‘방탄형’ 총리가 될지도 모를 그가 명실상부하게 국정을 통할하는 ‘실세형’으로 바뀔지 눈여겨볼 일이다.

문명재 연세대 교수는 “정부조직 개편 초기에도 대통령에 과부하가 걸릴 거라는 우려가 많았다”며 “현재는 총리실이 반으로 줄어 모든 조정 기능을 다시 수행하긴 어려우므로 역할 분담을 해야 한다. 대통령과 총리가 인식을 공유하며 점진적으로 역할을 조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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