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 출범3개월]<4>안팎 도전받는 ‘창조적 실용외교’

  • 입력 2008년 5월 27일 02시 58분


새 정부 대북정책의 실행 책임을 맡은 통일부는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어려운 때일수록 국민의 합의와 이해를 구하면서 긴 안목으로 정책 실행을 위한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새 정부 대북정책의 실행 책임을 맡은 통일부는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어려운 때일수록 국민의 합의와 이해를 구하면서 긴 안목으로 정책 실행을 위한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산뜻한 출발…잇단 암초…우왕좌왕…호된 ‘성장통’

원인은

여론수렴 부족 → 졸속협상 논란 → 민심이반

北식량지원 기준도 외교부-통일부 딴소리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팀은 출범 후 3개월 동안 대외정책 수립과 실행에서 흔히 벌어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절감했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착수한 ‘창조적 실용외교’와 새로운 대북정책은 국내외의 다양한 도전과 마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긴 안목으로 정책 실행을 위한 전략과 추진 체계를 재정비할 것을 당부했다.

▽실용외교의 위기=새 정부는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에 대한 외교의 목표로 ‘창조적 실용’을 내세웠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싼 광우병 논란과 일본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명기 추진 등 의외의 암초를 만나 고전하고 있다.

새 정부는 지난 정부가 한미관계를 훼손했다고 판단하고 이를 복원하는 데 노력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앞두고 타결된 한미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은 정부의 여론수렴 과정 미비 등으로 ‘검역 주권을 포기한 졸속 협상’이라는 논란을 야기하며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미관계의 문제점은 4월 이 대통령의 미국 방문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대통령이 워싱턴 방문 도중 미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북 상설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한 것은 현지에서 파악한 북-미 관계의 진전 정도가 예상보다 빨라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와 통일부는 사전에 제안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강조했고, 4월 한일 정상회담 때도 ‘한일 신시대’를 열기로 합의했지만 일본이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명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일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일본 문부성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점을 교과서에 적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우리 정부가 외교부 장관을 통해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招致) 한 것에 대해서도 정교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월’로 규정하고 모든 정책을 반대로 가져가려는 이념적인 시도에 문제가 있다”고 평가하고 “대미 대중 대북 정책이 상호 조율되지 않은 채 제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북정책, 목적은 뚜렷하나 실행 과정에 마찰=새 정부 대북정책의 목표는 변함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국민적 합의 없이 추진된 ‘햇볕정책’의 부작용을 치유하고 경직된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는 한편 성공한 체제인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관계를 만들겠다는 것.

이에 반대해 남북관계를 중단 상태로 이끈 책임은 기본적으로 북한에 있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새 정부가 들어서고 총선이 있은 4월 9일까지 새 정책이 구체적으로 이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3월 말부터 대남 비방을 시작해 남북관계의 판을 뒤엎은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총선이 끝나고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온 뒤 5월 초 대북 지원을 가시화할 계획이었으나 북한의 태도 변화로 불가능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 변화 이후 과거 햇볕정책 지지층을 중심으로 새 대북정책 흔들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정부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

▽대북 식량 지원 문제가 대표적 사례=정부는 출범 후 북한의 요청과 인도적 화답을 대북 식량지원의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미국이 대북 식량 50만 t 지원을 가시화하고 북한 식량난에 대한 일부 여론의 우려가 커지자 조금씩 경우의 수를 추가했다.

정부 당국자는 4월 30일 비공식 간담회에서 정부의 대북 인도적 식량지원 조건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다른 당국자는 2일 “인도적 지원은 수혜국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는 유엔 결의안을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북한 식량위기와 국민 여론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원할 수 있으나 가정할 수는 없다”며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어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19일 “북한의 식량 사정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확인되거나 심각한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북한의 요청이 없어도 식량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며 이른바 ‘대북 식량 지원 3원칙’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미리 마련된 기준에 상황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기준을 만들어 자칫 ‘철학이 없다’는 비판을 초래할 우려가 제기됐다. 주무부처인 통일부 장관이 아니라 유 장관이 대북 식량 지원의 원칙을 발표하자 유관 부처 간 정책 조율 문제도 불거졌다.

▽자신감 없는 통일부=한편에서는 통일부가 정책 실행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일부는 ‘북한 바로 알기’라는 새 정부 정책과제의 하나로 통일교육 강의 및 교재 내용을 대폭 수정했지만 일부 여론의 비난을 우려한 듯 적극 홍보하지 않았다.

김하중 장관이 북한의 요구에 따라 6·15 및 10·4선언 이행 문제 협의 가능성을 시인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김 장관은 4월 2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나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이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갔다.

그러나 의원들이 이 부분을 질문하지 않자 김 장관은 크게 관련이 없는 질문에 대해 이 답변을 세 번이나 했다. 이 또한 기자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자 회의가 끝난 뒤 일부 기자에게 통일부 간부들이 의미를 전달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일부 관계자는 “장관이 당당하게 기자들에게 브리핑했으면 됐을 일”이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해법은

靑수석이 조정자 돼 외교안보부처 조율을

한미일 삼각동맹外중-러 관계도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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