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한달새 2.5배로… 북녘 드리운 굶주림의 그림자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북한 장마당의 식량 가격 상승률이 심상찮다. 이달 들어 잠시 상승세가 꺾이긴 했지만, 치솟는 북한의 식량 가격은 북한에서 다시 대량 아사(餓死)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조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북지원단체 ‘좋은 벗들’의 이사장인 법륜 스님은 8일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5월과 6월에만 20만∼30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할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긴급 식량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과장됐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2008년 봄. 북한 내부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대북 소식통들의 전언을 통해 진단해 본다.》

생산량 - 국제지원 줄어 식량난 가속

시장활동 소외된 고아 - 노인들 위험

지원단체 “20만∼30만명 아사 가능성”

일부 “1990년대와 달리 자생력 있어”

▽치솟는 쌀값=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달 말 북한의 함흥과 원산 등 일부 지역에서 쌀값은 3100원, 옥수수 값은 1500원까지 치솟았다.

한 달 전인 3월 20일경 이곳의 쌀값은 1200원, 옥수수 값은 600원 정도였다. 불과 한 달 사이 주요 곡물가격이 2.5배나 뛴 것이다. 이는 지난 1년 사이 약 2∼3배 오른 국제시장 곡물가 급등세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6일 본보와 통화한 북한 소식통은 “4월 초부터 쌀값이 폭등했지만 당국이 강력한 쌀 가격 단속을 시작하고 최근에는 해외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아 현재 쌀은 1kg에 2200∼2300원, 옥수수는 1200∼1300원 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쌀값 상승은 핵실험 이후 남한의 대북 식량지원이 거의 끊긴 데다 지난해 대홍수로 자체 식량 생산량도 급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제 식량가격이 급등하고 중국이 올해 초부터 해외 곡물수출 억제 정책을 실시하면서 수입도 어려워졌다.

▽가계에 주는 영향은=북한 주민은 영양분 섭취를 거의 전적으로 주식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가계당 식량소비량이 매우 높다. 4인 가족이라면 한 달에 최소한 60kg의 식량을 소비한다. 1년으로 치면 720kg이 필요하다.

옥수수 1kg의 가격을 현재의 1200원으로 계산하면 1년에 옥수수만 먹어도 북한 돈 86만4000원을 지출해야 한다. 5월 초 북한의 원-달러 환율이 35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약 247달러에 해당한다. 여기에 연료와 부식물, 기타 필수품 가격을 고려하면 최소 400∼500달러는 있어야 4인 가족이 1년을 버틸 수 있다.

북한의 국민소득은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은 3월 “통일부에서 전문가들에게 용역을 맡긴 결과 2005년 북한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68∼389달러였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북한 4인 가족의 GNI 합은 1500달러 전후가 돼 먹고사는 데 크게 지장은 없다. 하지만 세계 대다수 국가에서 4인 가계소득이 국민 1인당 평균 GNI에도 못 미치는 가정의 비율이 두 자릿수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에도 상당한 주민이 아사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아사자 발생의 진실은=‘좋은 벗들’은 6일 소식지를 통해 “황해도의 일부 농촌에서는 아이들과 노인을 위주로 아사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논평을 통해 “아사의 태풍이 북상하기 전에 빨리 한국 정부의 지원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 등 일부 북한 전문가는 “북한은 장마당을 통한 수급구조가 형성돼 이제 대량 아사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 팀장은 “1990년대 중반은 시장의 자생력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의 공급 능력이 붕괴됐기 때문에 대량 아사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현재 장마당에서 거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버틸 수 있지만 식량가격이 계속 상승하면 내년 봄쯤에는 대량 아사 사태가 본격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식량 가격 상승으로 가계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져도 가구나 가전제품, 마지막으로 집을 팔아서라도 내년 봄까지는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보육원 어린이들, 노인 세대, 병원 환자 등 경제활동에서 소외된 계층은 이미 아사의 위험에 직면했으며 그 다음 희생자는 시장 활동에 적극 참여하지도 않고 집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을 농민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北 “美 식량협상단 왔다” 이례적 보도▼

뒤숭숭한 민심 달래기 나서

美 “이달 중 지원 여부 확정”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8일 미국 식량지원협상 대표단의 방북 사실을 이례적으로 보도했다.

통신은 “미국 식량협상 대표단이 5일부터 8일까지 조선(북한)을 방문했다”면서 “양국 간의 인도주의적 식량 제공에 관한 협상은 진지하게 잘 진행됐다”고 전했다.

북한 매체가 미국 식량지원협상 대표단의 방북 사실을 보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북한 내부에서 곡물가가 폭등하고 민심까지 뒤숭숭해지자 외부의 지원 사실을 공포해 주민 여론을 진정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북한이 주민들에게 ‘철천지 원쑤’로 교육해 온 미국에서 식량을 지원받는다는 사실까지 대민 선전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내부 사정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대다수 북한 주민이 “10년 넘게 ‘조금만 있으면 잘산다’는 선전을 들었는데 갈수록 나아지는 것은 없고 또 무리(떼)죽음당하게 생겼다”면서 정권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행동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3월 함북 청진시에서는 장마당 통제에 항의하는 1만 명에 가까운 주민들이 모여들어 지방 간부들을 굴복시키기도 했다.

간부들도 “이제는 주민들에게 조금만 참자고 선전할 염치가 없다”면서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북한 소식통은 “최근 노동자나 농민이 배고파 일을 못 나오겠다고 버티면 간부들이 ‘굶는 사람을 차마 끌어내지 못하겠다’면서 동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식량을 구입하러 떠난다며 거주지를 이탈하는 사람도 급속히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량 탈북사태가 발생했던 1990년대 중반 상황과 흡사하다.

한편 미국의소리(VOA)방송은 9일 “미국 정부가 이달 중 대북 지원을 최종 결정할 것이며 대북 지원 단체들은 미 정부를 대신해 북한에 식량을 전달할 준비를 끝낸 상태”라고 보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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