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통령 “공정위, 기업 위축시킨 면 있었다”

  • 입력 2008년 3월 29일 02시 59분


■ 업무보고서 지적

28일 업무보고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동안 재계가 대표적인 규제로 꼽아 온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없애고,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높여 관련 규제를 받는 그룹 수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공정위 서동원 부위원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공정위 정책의 큰 축을 사전 규제에서 사후 감시로, 대기업집단시책에서 경쟁촉진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 더 신속하고 과감한 개혁 요구

그러나 보고를 다 듣고 난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은 ‘방향은 맞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모두 발언에서부터 “그동안 공정위 역할이 오히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세계와 경쟁할 때 조금이라도 강점을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과거 규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금지 규제를 받는 그룹 수를 62개에서 41개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공정위 보고에 대해 “신중한 태도인데, 더 적극적인 사고로 풀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모순이 생기면 대책을 세우더라도 너무 소극적으로 해선 안 된다”고 질타했다.

이 대통령은 “개혁 입법은 새 국회가 구성되면 바로 제출해야 한다”며 “결정사항은 과감하게 제시하고 새 정부 첫 해에 바꿔야지 그러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출총제 폐지, “환영-우려” 엇갈려

재계는 이날 공정위가 밝힌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대규모기업집단 대상 그룹 축소 방침에 대해 “투자 제한이 풀리는 만큼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환영했다.

출총제는 자산 10조 원 이상 그룹 계열사 중 자산 2조 원 이상인 회사에 적용된다. 3월 현재 출총제 적용 대상인 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대한항공, 현대중공업 등 25개.

이들 기업은 순자산의 40%를 초과해 계열사 등 다른 국내 회사의 주식을 취득하거나 소유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가 사라지면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고 투자가 늘어나는 등의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재계는 주장했다.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기준 변경에 대해서도 규제 대상에서 빠지는 그룹이 계열사 간 출자 확대로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고 계열사 명의로 보증을 받을 수 있어 자금 조달이 쉬워질 것이라는 게 재계의 논리다.

공정위는 이 외에도 기업 M&A 때 공정위에 신고해야 하는 기준을 자산·매출 1000억 원 이상에서 2000억 원 이상으로 높이고, 기업에 대한 직권조사는 법 위반 혐의가 있거나 소비자 피해가 큰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기업 규제 완화에 대해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사를 줄이면 그만큼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감시하는 게 어려워지고, 출총제 규제 등을 풀면 소유·지배구조의 왜곡을 막기 힘들다는 것. 공정위는 기업 출자 현황 등의 공시를 통해 시장의 자율감시 체제를 강화한다고 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2007년 대규모기업집단(재벌) 지정 현황
자산총액 규모기업 집단
100조 원 이상삼성, 한국전력공사 등 2곳
50조∼100조 원현대자동차, SK, LG 등 3곳
10조∼50조 원대한주택공사, 롯데, 한국도로공사, 포스코, KT, 한국토지공사, GS, 금호아시아나, 한진, 현대중공업, 한화, 두산, 한국철도공사, 하이닉스, 한국가스공사 등 15곳
5조∼10조 원신세계, LS, 현대, 동부, CJ, 대림, GM대우,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STX, 동국제강, 이랜드 등 12곳
2조∼5조 원한국농촌공사, 현대백화점, 코오롱, 동양, KCC, 하이트맥주, 한진중공업, 효성, 현대오일뱅크, 현대산업개발, 영풍, KT&G, 세아, 부영, 대한전선, 태광산업, 동양화학, 한솔, 쌍용양회, 하나로텔레콤, 농심, 대성, 태평양, 태영, 문화방송, 삼양, 한국타이어, 교보생명보험, 오리온, 대우자동차판매 등 30곳
2007년 4월 13일 기준. 자료: 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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