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쑤의 땅’ 뉴욕서 자녀 영어교육 목매

  • 입력 2008년 3월 26일 02시 50분


■ 유엔주재 北대표부 생활상 들여다보니…

“영어 능해야 출세” 일부는 비싼 사립학교 보내기도

물가 비싸 서민아파트에서 공동 생활… 함께 출퇴근

박길연(65)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대사가 20년 가까운 미국 생활을 끝내고 조만간 평양으로 돌아간다. 박 대사는 1985년 2월부터 1996년까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수석대표로 근무했다. 이어 2001년부터 다시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에서 생활해 왔다.

박 대사를 비롯한 북한 외교관들의 미국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철천지 원쑤’의 땅이자 ‘자본주의의 심장부’ 뉴욕에서 사는 북한 외교관들의 생활상을 현지 소식통들을 통해 들여다봤다.

▽자력갱생의 예외지역, 하지만…=박 대사와 가족들은 그동안 화려한 뉴욕의 쇼핑가보다는 퀸스의 차이나타운에서 값싼 생필품을 구입하며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 외교관들은 서민층이 밀집한 루스벨트 섬의 아파트에 모여 산다”며 “이들은 공관 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승합차로 함께 출퇴근하고 생필품도 공동으로 구매한다”고 전했다.

뉴욕의 유엔대표부는 북한이 운영하는 전 세계 공관 중 유일하게 공관원에게 ‘체재비’를 지불하는 공관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경제사정 탓에 미국 이외의 지역에는 최소한의 운영비를 제외한 공관원 생활비는 자력갱생을 요구하는 것이 상례다. 이 때문에 일부 남미나 동남아 국가에서 북한 외교관이 밀무역에 연루돼 적발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유엔대표부의 경우 근무지에서 25마일(약 40km) 이상 벗어날 경우 미국 국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데다 세계 최고 수준인 뉴욕의 물가를 고려할 수밖에 없어 일종의 ‘특별배려’를 하고 있는 셈이다.

유엔대표부 직원은 직급에 따라 다르지만 매달 300∼600달러 정도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돈으로 생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식사는 유엔본부 근처의 ‘델리(간이음식점)’에서 해결하고 여가시간에는 맨해튼 동쪽에 있는 ‘이스트 리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북한에 호의적인 시각을 가진 교포들의 지원이 북한 외교관들의 ‘돈줄’이라는 소문도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과거 전례를 보면 이번에 박 대사 환송연이 뉴욕에서 있을 것이고 이 모임에서 ‘전별금’을 모아주는 것이 상례”라며 “이 돈은 북한 지도부에게 줄 선물 구입비용으로 사용된다”고 전했다.

▽영어 공부에 ‘다걸기(올인)’하기=이런 궁색한 생활 속에서도 일부 북한 외교관은 자녀의 영어 공부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북한 외교관의 자녀는 최근 미국 맨해튼 내 유명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했다. 또 다른 외교관은 사실상 무료로 교육 받을 수 있는 공립학교 대신 자녀를 사립학교에 진학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명문 사립학교의 경우 학비가 연간 2만∼3만 달러에 이르는 점에 비춰볼 때 세계에서 아주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북한 외교관으로서는 ‘대담한’ 선택을 한 셈이다.

북한 외교관들이 무리를 하면서까지 자녀들의 영어교육에 신경 쓰는 이유는 북한 외무성 내에서도 ‘노른자’로 불리는 미주국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당성’ 이외에도 유창한 영어실력이 필수이기 때문.

현재 대미(對美) 외교통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 부상 등이 북한 외교의 최고 실세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6자회담 차석대표인 이근 외무성 국장은 1993년 미주국 과장이 된 이후 15년째 미국만을 상대하고 있다.

북한 외교관들과 접촉이 있는 한 인사는 “북한 내에서도 유창한 영어 실력은 경쟁력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산”이라며 “대략 5년 정도인 미국 근무라는 ‘특혜’를 받은 북한 외교관들은 이 기간을 자녀들의 영어교육 기회로 최대한 이용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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