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작은 정부, 아직 멀었다

  • 입력 2008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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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틱 타이거’로 불리는 아일랜드는 ‘아시아의 호랑이’를 자부하는 우리와 기질적으로 많이 닮았다. 애들 교육에 끔찍하고, 다정도 병이어서 곧잘 흥분한다. 오랜 종주국이었던 영국을 싫어하는 것도 우리가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불행한 역사 탓인지, 20년 전만 해도 1인당 국내총생산은 영국의 70%에 불과했다. 1987년엔 재정 위기에다 실업률은 18%까지 치솟아 유럽의 환자 취급까지 받았다.

아일랜드 기적의 비밀, 재정 삭감

그랬던 아일랜드가 1988년 국민소득 1만 달러 고지에 올라서더니 8년 만에 2만 달러, 6년 만에 3만 달러, 그러고는 각각 2년 만에 4만 달러와 5만 달러를 돌파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영국과의 소득 수준도 뒤집혔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로는 1999년에 영국을 따라잡았고, 2006년부터는 구매력으로 따져도 명실 공히 영국보다 부자다.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잘사는 나라가 됐다고 상상해 보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만세를 부를 일 아닌가.

지금 세계 4위의 1인당 소득을 자랑하는 아일랜드 성공 요인으로 적잖은 사람이 유럽연합(EU)의 보조금 지원을 든다. 하지만 핵심은 ‘작은 정부 만들기’였다. 유럽중앙은행이 200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지출 개혁을 연구한 결과 “경제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성공 스토리”로 꼽았을 정도다.

아일랜드는 1980년대 초와 1990년대 초 두 번에 걸쳐 공무원 수와 임금, 연금 등을 줄여 재정 지출과 세금을 낮추는 파격적 정부 개혁을 했다. 노동유연성 확보, 민영화 등 시장 친화적 개혁이 이어진 것도 정부의 이런 모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작은 정부의 역동성이 민간부문의 활력으로,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새로 들어설 정부의 조직 개편안이 현 정부에서 편히 지내온 공무원들한테는 상당히 충격적인 모양이다. 그러나 지금껏 철밥통에 밥 먹어본 일 없는 민간인들에게 그 정도의 구조조정은 놀랄 일도 못 된다. 직장 형편이 어려우면 당연히, 그렇지 않더라도 고과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일터를 떠나면서 국민은 살아왔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 실정(失政)을 심판한 이번 대선 결과에서 공무원들도 결백하다 할 수 없는 처지다. 영혼도 없이 능력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또 코드를 지렛대 삼아 세계적 추세와는 거꾸로 달린 탓에 우리나라 행정효율이 2002년 26위에서 작년 31위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고위직 사이에선 “공무원 수를 줄이면 남은 사람들 임금을 올려 사기를 높여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배부른 소리가 나온다니, 세상을 몰라도 이렇게 깜깜할 순 없다.

노 대통령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은 정부가 좋은 정부라는 국민 관념을 바꿀 수 없었다”고 딴죽을 걸었다. 아일랜드같이 작은 나라뿐 아니라 OECD 국가들도 정부 지출이 많아지면 민간의 고용과 투자, 기업가정신, 기술역동성이 떨어진다는 게 유럽중앙은행의 실증적 연구 결과다. 우리 같은 신흥 경제국에선 재정지출 30%가 넘어서면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집권 첫해 30.9%를 넘긴 정부가 바로 노 정부였다.

공무원연금 개혁 주시하겠다

이번 정부 개편이 방만한 조직의 통합에 그친다면 작은 정부도, 정부 개혁이라고도 할 수 없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공무원의 신분을 철저히 보장한다”며 공무원들을 달래는 데 열심이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집권도 하기 전에 국민 아닌 공무원 눈치부터 살피는 건가.

새 정부가 진정 국민을 섬길 자세라면 조직 축소만으론 어림도 없다. 권한과 비용은 줄이고 효율은 높이는 질적 개혁이 더 중요하다. 올해도 1조532억 원의 세금을 퍼부어야 하는 공무원연금부터 개혁해야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겠다. 영혼도, 능력도 없이 관존민비 사상만 가득한 공무원들을 정년까지 보장하는 것도 모자라 혈세로 세상 끝까지 부양할 순 없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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