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캠프 847억 모금… 용처 검증 없이 “수사 끝”

  • 입력 2007년 11월 3일 0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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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리지 않은 의혹들

최측근 서정우씨 575억 거둔 혐의로 구속

이회창씨는 “모금 과정 몰랐다” 입건 안해

기업채권 154억 등 잔금 규모-행방도 의문

노무현캠프 119억 모금… 안희정씨 등 구속

盧대통령 ‘잔금 2억여원 사용 지시’ 드러나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검찰이 2004년 5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한 지 3년 반 만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측이 1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대선 출마를 견제하기 위해 “이 전 총재가 출마하려면 2002년 대선자금 사용 명세부터 밝혀야 할 것”이라고 공격한 게 도화선이 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당시 발표한 수사 결과 자체가 애초부터 이런 불씨가 언젠가는 다시 타오를 수밖에 없는 소지를 남겼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여러 가지 의혹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선 최고 책임자였던 이 전 총재와 노무현 대통령을 입건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로서는 당시 감당하기 어려운 파문을 피하기 위해 궁여지책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또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한 부분에 대해 수사를 하긴 했지만 자금의 용처 추적은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음에도 중도에서 멈췄다.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검찰 내부에는 대선자금 사건의 ‘재수사’ 요구가 언젠가는 돌출할 가능성이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다고 보는 사람이 꽤 있다. 새로운 단서가 불거져 나오고 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비등해지면 언제든 대선자금 수사라는 ‘판도라 상자’의 뚜껑은 다시 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전 총재 ‘대선 잔금’ 있나=수사결과 발표 당시 검찰이 밝혀낸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823억2000만 원이었다. 삼성그룹에서 받은 채권 300억 원과 현금 40억 원을 비롯해 LG 150억 원, SK 100억 원, 현대자동차 109억 원, 한화 40억 원 등이었다. 특히 현대차와 LG에서는 돈이 든 차량을 통째로 넘겨받아 ‘차떼기 당’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05년 12월 삼성 채권에 대한 검찰의 추가 수사 결과 24억7000만 원의 채권이 한나라당에 제공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한나라당이 거둔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847억9000만 원으로 늘어났다.

먼저 천문학적 규모의 대선자금이 불법 모금됐지만 검찰은 이 전 총재를 입건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이익을 취한 것이 없고, 직접 불법자금을 수령하거나 보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이 전 총재의 최측근이었던 서정우 변호사가 575억 원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는데도 이 전 총재가 모금 과정을 전혀 몰랐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 주변에서는 “기업들이 이 전 총재를 보고 돈을 준 것일 텐데 이 전 총재만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대선 직후인 2003년 1월 이 전 총재는 김영일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에게서 “삼성 채권 154억 원이 남아 있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서 변호사에게 보관하도록 한 부분이 자금세탁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무혐의 처리됐다.

서 변호사는 이 가운데 138억 원을 삼성에 반납했고 16억 원은 회계 처리를 위해 김 사무총장에게 반납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불법 대선자금의 용처는 거의 검증되지 않았다.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1일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의 ‘수첩’을 거론한 것도 용처 문제와 연관된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검찰은 불법 대선자금 중 580억여 원은 중앙당과 지구당, 시도지부, 다른 당에서 입당한 의원 지원과 사조직 관리 등에 사용했으며 대선 이후에 26억 원을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불법 대선자금을 얼마나 ‘모았는지’가 관심이었고 어디에 ‘썼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며 “그 때문에 대부분 관계자들의 진술 위주로 용처를 파악했을 뿐 정밀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 측 문제는 없나=검찰은 당시 민주당이 모금한 불법 대선자금을 113억8700만 원으로 파악했다. 역시 나중에 삼성 채권 6억 원이 추가로 대통합민주신당 이광재 의원에게 넘어간 것이 밝혀져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119억8700만 원으로 늘어났다.

노 대통령은 “대선 때 우리가 쓴 불법 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 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7분의 1 정도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대선자금 모금의 핵심은 노 대통령의 386 최측근인 안희정 씨였다. 안 씨는 2002년 삼성에서 채권 15억 원과 현금 15억 원, 롯데에서 6억 원 등 모두 51억9000만 원을 받았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 씨와 이 의원이 불법 대선자금 모금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는데도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역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입건도 하지 않았다.

특히 노 대통령은 2002년 5월과 7월 최도술 씨 등에게 “선봉술 씨 등이 장수천 채무 변제로 입은 손실을 보전해 주라”며 당시 부산선대위 보관금 2억5000만 원을 지목해 말했다. 선 씨에게 2억5000만 원을 준 최 씨는 기소됐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盧대통령 공소시효 정지 상태

‘퇴임이후 수사’ 법적 문제 없어

“나름대로의 판단은 있지만 대통령 직무 수행이 계속돼야 하며 관련자 조사로도 충분히 진상을 파악할 수 있어 지금은 조사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2004년 5월 당시 안대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은 2002년 대선자금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현직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유보하면서 검찰은 ‘나름대로의 판단’과 ‘지금은 조사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전제를 제시한 것이다.

검찰에 직접 출석해 조사를 받았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의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노 대통령을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높은 상태여서 안 중수부장은 고심 끝에 이 같은 표현을 선택했다고 한다.

검사 20여 명이 투입된 대선자금 수사팀 내부에서도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조사 여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 일부에서는 “헌법 84조에 현직 대통령의 재직 중 형사소추 면제 조항이 있긴 하지만 소추와 수사는 별개이므로 무조건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론’을 내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헌법상 현직 대통령의 소추 면제 조항은 대통령의 원활한 직무 수행을 위한 것인 만큼 수사 착수만으로도 대통령의 직무 수행이 곤란해질 수 있다는 현실론도 만만찮았다.

당시 수사팀 일부가 현직 대통령이라도 최소한 서면조사는 해야 한다고 강하게 밀어붙여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검찰 수뇌부는 수사 검사까지 지정하며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 수뇌부가 결국 원칙론 대신 현실론을 선택하면서 노 대통령의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실론을 택한 수사 관계자들도 재임 중 대통령을 형사소추(기소)하지 못하도록 한 헌법 규정에 따라 수사 및 기소를 하지 않았을 뿐 혐의는 어느 정도 인정된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전 총재도 검찰의 의지라기보다는 본인이 출석하겠다고 해서 조사가 이뤄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전 총재를 조사 후 입건조차 하지 않았던 검찰이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현직 대통령 조사를 강행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이론상으로는 노 대통령의 조사가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다. 퇴임 후 얼마든지 검찰이 수사를 재개하는 것이 법적으로 가능하기 때문.

재임 기간 중에는 노 대통령의 당시 정치자금법 공소시효(3년)가 자동적으로 정지됐기 때문에 퇴임 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법적인 장애물은 없다는 얘기다.

검찰 일각에선 당시 대선자금 수사팀이 민주당 후보 시절 노 대통령이 대선자금 모금과 사용에 관여한 정황을 상당 부분 확보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나돈다.

또 한나라당 권력형비리조사특별위원회는 대선 직후 기업체들이 노 대통령 측에게 당선 축하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주요 과제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퇴임 이후 검찰은 상황 변화와 여론의 추이 등 여러 가지를 검토하면서 수사 착수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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